코로나가 일깨운 국가의 중요성[오늘과 내일/신연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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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국민의 수준이 판가름한 방역
코로나 이후 대비한 사회체제 구축해야

신연수 논설위원
신연수 논설위원
미국의 코로나19 환자 수가 100만 명을 넘고, 사망자는 6만 명에 다가섰다. 이런 참혹한 상황은 국민의 안전보다 재선 욕심이 앞섰던 좌충우돌 정치 지도자가 더 악화시킨 듯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월부터 계속된 정보당국과 보건책임자의 경고를 무시해 최악의 사태를 불렀다.

트럼프 탓만은 아니다. 미국은 감염을 막기 위해 각 주마다 집으로 대피하라는 조치를 내렸지만 집 없는 사람이 수십만 명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이 제공하는 전 국민 의료보험도 없어 병원에 가도 검사나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노동자들을 지켜줄 노조가 거의 없어 수천만 명이 대량 해고를 당하고 있다. 그래도 미국은 세계 제1의 강국이니 머지않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 다수에게 최소한의 안전도 보장해줄 수 없는 빈국에 코로나가 퍼진다면 큰일이다.

코로나19가 ‘국가의 귀환’을 재촉하고 있다. 전염병은 국경이나 인종에 상관없이 퍼지지만 전염병과의 전쟁은 나라별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미중 무역분쟁과 보호무역주의의 득세, 브렉시트 등으로 이미 퇴조하기 시작한 ‘글로벌화’는 코로나로 강한 충격을 받았다. 국경 없이 자유롭게 오가던 유럽 여러 나라는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자국민을 위해 마스크와 방호복 하나라도 더 구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있다. 유럽 안에서도 나라별 지도자의 역량과 의료체계, 경제수준에 따라 코로나의 충격이 다 다르다.

코로나 속에 치러진 4·15총선의 높은 투표율은 정치와 국가의 중요성을 간파한 민심이었다. 지금까지 한국은 선방했다. 정부가 2003년 사스 직후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CDC)를 본떠 만든 질병관리본부가 있고 유능한 의료진이 있었다. 1월부터 질본이 전문가들을 초청해 진단키트 대량 확보에 나서는 등 민관 협력이 주효했다. 누구나 쉽게 병원에 갈 수 있게 해주는 공공 의료보험과 세계적인 정보통신기술, 국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더해졌다.

앞으로 코로나가 초래한 경제난을 극복하는 데도 정치와 국가의 역할이 커질 것이다. 180석이라는 압도적 승리를 거둔 뒤 여당 지도자가 “두렵다”고 한 것은 정확한 표현이었다. 이제는 누구를 탓하거나 핑계를 댈 수도 없다. 다가오는 경제 폭풍을 이기고 국민의 삶을 어떻게 지켜낼지, 이미 각종 성인병을 앓고 있던 사회와 경제를 어떻게 치료할지, 이제부터가 진짜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최근 시리즈 사설에서 “미국은 코로나19 이전부터 오래 병들어 있었다”면서 “상위 1%가 하위 80%보다 많은 부(富)를 차지한 불평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남북전쟁 중에도 주립대학 관련 법을 만든 에이브러햄 링컨과 대공황 중에 사회보장제도를 만든 프랭클린 루스벨트처럼 코로나19를 계기로 더 공정하고 강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 역시 위기 국면에서 사회의 취약 부문들이 드러나고 있다.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프리랜서와 파견업체 직원들, 전염병 우려에도 대면근로를 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 자영업자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이번 위기를 계기로 취약계층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다시 짜는 것은 정치와 정부의 몫이다. 30년이 지나도 30대 기업이 바뀌지 않는, 고인 물 같은 경제에 신선한 물을 공급해 다시 도약할 책임도 정부 여당에 있다.

국가와 공공부문이 커지면 권력 독점과 비효율, 경직성의 우려도 높아진다. 민주적 통제와 유연한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민관의 긴밀한 협력으로 성공한 K방역처럼 국민의 역동성과 자발성을 정부가 뒤에서 밀어주고 앞에서 끌어주며 잘 엮어내는 그런 국가, 그런 사회를 만들면 좋겠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
#코로나19#사회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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