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9〉다리 9개 말린 오징어 “내 다리 내놔”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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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직 선장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직 선장
1월이면 오징어 건조가 끝날 무렵이다. 최근 오징어가 대풍이라는 기사가 났다. 오징어만큼 우리에게 친근한 바다 먹거리도 없다. 맥주 안주나 젓갈로 인기가 높다. 9월 추석 무렵부터 11월 말까지 약 3개월 정도 잡히는 오징어는 동해안 주민에게 기쁨을 선사한다. 오징어 채낚기(미끼 없이 잡는 방식) 선주는 선원들이 잡아온 오징어를 팔아 수입을 얻는다. 선원들은 채낚기 결과물의 일정 몫을 선주에게 주고 남는 오징어를 팔아 벌이를 한다.

과거에는 선주도, 선원도 아닌 사람들은 소위 오징어를 건조해 생계를 꾸렸다. 생물 오징어를 사서 일주일 정도 건조했다가 몇 달 저장한 뒤 생물보다 3∼4배 높은 가격으로 상인들에게 판다. 오징어를 살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는 아버지 몫이었다.

어선이 잡아온 오징어를 어판장에서 구매한다. 가정에서 오징어를 건조하면 통상 다섯 발, 오징어 1만 마리를 산다. 오징어를 헤아리는 단위가 독특하다. 한 축(생물)은 20마리, 한 발은 100축을 말한다.

사람을 사서 오징어 배를 따 내장을 손질하고 바닷물을 퍼 올려 씻어낸다. 손질한 오징어를 리어카에 가득 실어 몇 차례 집으로 옮긴다. 무겁기 때문에 학동들이 동원된다. 집 앞마당에는 오징어 건조를 위한 막대기를 여러 열로 꽂아놓은 뒤 막대기 중간에 새끼줄을 쳐둬야 한다. 이는 할아버지 몫이다.

오징어가 마당에 도착하면 온 식구가 달라붙어 오징어를 새끼줄에 건다. 오전 한나절 남짓 하면 1만 마리를 모두 건다. 오징어의 물이 빠지면 다리를 벌린 상태로 건조시키기 위해 작은 막대기를 끼워준다.

하루가 지나면 바람에 오징어 물기가 마른다. 온 식구가 붙어서 오징어 모양을 만들어 준다. 이 작업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밤에 주로 한다. 오징어 머리 쪽에 발의 뒤축을 대고 힘을 준 다음 오징어 몸통의 양 끝을 잡고 당긴다. 그러면 삼각형 오징어 모양이 보기 좋게 만들어진다. 모양을 잡은 오징어를 다시 줄에다 건다. 이렇게 이틀 정도 볕에 말리면 오징어는 상품이 될 정도로 마른다.

이제는 오징어를 거둬 20마리씩 축을 만든다. 18마리를 귀를 맞대어 차곡차곡 쌓은 뒤 크고 모양 좋은 놈을 축의 위아래에 둔다. 오징어의 다리는 열 개인데 그중에 양쪽 두 개의 다리가 길다. 이 다리를 몸통으로 돌리면서 축을 짓게 된다. 이렇게 축이 된 오징어는 집의 구석진 곳에 쌓아 보관한다. 추운 겨울을 지낸 오징어는 시간이 지나면서 하얀 분이 핀다. 최상품의 건조 오징어가 만들어진다. 당시 오징어는 학생들의 도시락 반찬으로 애용됐다. 문어의 다리는 여덟 개이지만, 오징어 다리는 열 개다. 오징어 다리가 아홉 개밖에 없었다면 건조 과정에서 다리 하나가 자녀들의 도시락 반찬에 슬쩍 사용되었으리라.

동해안 어촌의 오징어 건조는 농촌의 소 키우기와 마찬가지로 가족 모두의 정성이 들어가는 협업의 하나였다. 밤을 새우며 오징어 손질을 할 때는 어른들이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주면서 아이들의 잠을 깨웠다. 협업으로 이루어지는 오징어 건조 과정을 거치면서 가족들 간 사랑과 우애는 더 깊어갔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직 선장
#오징어 건조#오징어 대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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