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광현]배 아픔 해소의 대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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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현 논설위원
김광현 논설위원
남의 배 아픈 것을 고치는데 내 배가 더 아프다는 걸 어떻게 하겠나. 10년간 논란을 빚어온 영리병원 사업이 우여곡절 끝에 사실상 무산됐다. 원희룡 제주지사가 국내 최초 영리병원으로 주목을 끌었던 제주 녹지국제병원에 대해 “공론조사위원회의 불허 권고를 최대한 존중하겠다”고 공식회의 자리에서 8일 밝혔다. 첫 영리병원이 될 뻔한 녹지국제병원은 중앙정부가 적법한 절차를 거쳐 사업계획을 승인했고 제주도도 이를 받아들였고 중국 자본이 778억 원 투자됐다. 지난해 7월 서귀포 헬스케어타운 안에 병원 건물을 준공하고 의사 간호사까지 채용해 개업 허가만 기다리고 있던 상태다.

올해 봄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 원 지사가 이 사업을 공론에 부친다고 할 때 이미 개업허가는 물 건너 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대개는 공론화 혹은 여론조사로 의사결정을 하면 고급화, 차별화보다는 평준화 성향이 수적으로 우세한 경우가 많고 영리병원 역시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7월 열렸던 공개토론회에서 한 시민단체 대표는 “영리병원은 수익을 내야 해 진료 인력을 줄이고 진료시간도 짧아지기 때문에 가격이 비싼데도 의료의 질이 낮아진다”고 반대 논리를 폈다. 심각한 정신질환자가 아닌 다음에야 어떤 환자가 이런 병원에 제 발로 찾아가겠으며 병원이 이익을 남길 수 있겠는가. 그래도 표가 달려 있는데 선거를 코앞에 둔 정치인에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모양이다.

영리병원이란 용어부터가 이상야릇한 이름이다. 무료 보건소를 빼고는 동네 병원에서 서울 강남 성형외과, 대형 대학병원에 이르기까지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 병원이 별달리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돈 많은 사람이 자기 돈 많이 내고서라도 보건복지부로부터 일일이 간섭당하는 일반 병원에서는 받을 수 없는 고급 의료 서비스를 건강보험에 관계없이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는 것이 영리병원의 요체다. 이런 서비스 도입이 어려워졌으니 중국, 중동 지역 국가의 부유층들이 수준 높은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 한국에 와서 돈을 쓰고 갈 일도 없게 됐다. 의료 서비스 수출 기회는 물론이고 투자 유치하고 사업승인까지 내주고도 마지막에 사업을 좌절시킨 한국은 해외 투자 업계에서 신뢰까지 상실했다.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배 아픔 해소 정책’이 부동산정책이다. 집값 대책은 경제정책이라기보다는 정치·사회정책에 가깝다. 부동산정책 방향을 사실상 결정하는 인물이 대통령을 빼고는 김동연 경제부총리나 윤종원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이 아니라 김수현 사회수석으로 알려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문제는 다른 접근이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정치·사회적 접근은 사회정의 차원에서 불의와 싸우는 것을 전제로 하지만 경제적 접근은 목표는 같을지라도 수요 공급의 불균형을 해소해 자연스럽게 집값 문제를 푸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엊그제 발표된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로머 뉴욕대 교수는 도시화와 집값 상승에 대해 의미 있는 발언을 했다. 그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주택 수요가 늘어나는데 공급이 증가하지 않으면 가격은 오르기 마련”이라면서 “그냥 시장에 맡기면 수요공급원칙에 따라 스스로 공급이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노벨상 수상자치고는 너무 단순하고 뻔한 말 같지만 경험적으로도 그만한 해답이 없다.

배고픈 것도 배 아픈 것도 동시에 모두 해소할 수 있으면 그보다 좋은 정책은 없다. 그렇지 않으니까 늘 문제다. 그럴 때는 미래 세대를 먼저 생각하고 정부의 신뢰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영리병원#제주 녹지국제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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