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장원재]일본에 취업한 P 씨에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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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 도쿄 특파원
장원재 도쿄 특파원
최근 일본 도쿄의 정보기술(IT) 회사에 입사가 결정됐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취업 때문에 고민하던 모습을 기억하는 터라 무척 반가웠습니다. 영어 일본어가 능숙하고 각종 자격증을 갖춘 당신이 갈 회사가 없다는 건 사회적 비극이라 생각했거든요.

새해 좋은 소식에 축하 인사를 겸해 몇 가지 덕담을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취직한 이들에게 물어보니 일본 직장 문화가 일하기 나쁜 편은 아니라고 하더군요. 교통비 등 복리후생이 충실하고, 휴일과 야근수당도 원칙대로라고 합니다. 최근 정부 정책 덕분에 유연근무제 등 다양한 근무 방식도 도입되고 있고요.

배경에는 인구 감소로 인한 극심한 구인난이 있습니다. 일본에는 구직자 1명당 일자리가 1.56개나 있습니다. 제조업 기업 80%가 ‘인재 확보가 당면 과제’라고 답할 정도입니다.

실감이 안 난다고요? 최근 인터넷에선 매일 영업시간이 다른 아이스크림 가게가 화제가 됐습니다. 하루는 오후 4∼8시, 다음 날은 오후 5∼8시 등 하루에 3∼5시간만 문을 열더군요. 영업시간에 맞춰 종업원을 구하는 게 아니라 종업원 시간에 맞춰 가게를 여는 겁니다. 사람이 귀한 만큼 당분간은 월급도 오르고, 근무환경도 더 개선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일본에선 인간관계가 한국처럼 끈끈하지 않아 향수병에 걸리는 이들이 있다고 하네요. 매일 혼밥을 하다 보면 ‘가족 친구 놔두고 여기서 뭐 하나’ 하는 생각도 들 겁니다. 부디 마음을 잘 다잡으시길 바랍니다. 일본에 취업한 한국인은 2016년 기준 4만8000명이나 되고, IT 인재 교류회 등 각종 한국인 모임이 있습니다. 비슷한 처지의 분들과 소통하시면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될 겁니다.

아시겠지만 최근 일본 내 대한(對韓) 감정은 좋지 않습니다. 지난해 말 일본군 위안부 합의 검증 발표 후 우익 성향 신문과 인터넷 등에 한국을 폄훼하는 글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물론 일상에서 혐한(嫌韓) 분위기를 느낄 일이 많진 않습니다. 혹시 불쾌한 일을 당하신다면 그런 이들은 극히 일부라는 걸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물론 처음엔 시행착오가 많을 겁니다. 하지만 한국인 특유의 근면성과 진취성, 성실성을 발휘하면 사내에서 금세 인정받을 걸로 확신합니다. 그게 중장기적으로 한국에 대한 일본 내 인식을 개선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 일본 신문에서 홍콩에 살던 중년 일본인의 귀국이 늘고 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사실 일본도 1990년대 중반 심각한 청년실업으로 고민했습니다. 그때 ‘홍콩에 일자리가 있다’는 말에 바다를 건넜던 일본인들이 돌아온다는 겁니다. 일본 내 일자리가 많아진 데다 나이 들면서 고향도 생각나고 고령화된 부모도 돌봐야 하기 때문이죠.

새해에도 한국의 일자리 사정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구구조상 2020년대에 들어서면 취업난이 조금씩 완화될 거라고 하네요. 물론 저절로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겁니다. 정부에서 혁신 기업을 육성하고, 민간 기업의 일자리 창출 노력을 적극 지원할 때 가능한 얘기겠죠.

한국에 좋은 일자리가 많다면 당신 같은 인재가 바다를 안 건너도 됐을 텐데…. 개인적으론 합리적인 선택이지만 국가적으론 두뇌 유출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언젠가 저도 일본에서 취업한 한국인들이 글로벌 인재로 탈바꿈해 한국에 돌아간다는 기사를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날이 올 때까지 서로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건강하게 지냅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장원재 도쿄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광화문에서#장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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