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北, 이희호 방북까지 남한 협박용 삼아서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0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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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그제 “남한 정부와 언론이 우리의 최고 존엄을 모독했다”며 “모독 중상 도발을 계속하면 이희호 여사의 방북이 허사가 될 수 있다”고 위협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인 이 여사의 8월 5∼8일 평양 방문에 합의한 지 이틀 만에 이런 반응을 보여 이 여사를 초대한 북한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은 올해 5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개성 방문을 하루 전날 무산시킨 바 있다. 이번에도 이 여사의 평양 방문 합의를 깰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어제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이 여사의 방북이 경색된 남북관계를 푸는 계기가 될 수 있는데도 북측 메시지가 부정적이어서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이 여사의 방북은 북한이 먼저 제안했다. 북한 김정은은 지난해 12월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주기 때 조화를 보내준 것에 사의를 표하면서 이 여사를 초청했다. 이 여사는 올해 5월 방북을 희망했으나 북측이 대답을 미뤄 일정 확정이 늦어졌다. 이 여사 측은 육로(陸路) 방문을 원했지만 북측은 항공편을 이용한 서해 직항로를 제안해 관철했다. 초청한 사람이 이런저런 트집을 잡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북한이 주장하는 ‘최고 존엄 모독’은 김정은이 최근 준공된 순안공항 신청사를 둘러본 것과 관련한 국내 보도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부 한국 언론은 북한이 순안공항 신청사를 선전하기 위해 이 여사의 서해 직항로 방북을 요구했다고 분석했다. 어째서 ‘최고 존엄’ 김정은을 모독했다는 것인지 납득할 수 없다.

돌발 변수가 생기긴 했지만 이 여사가 남북 지도자의 메시지를 전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면 남북관계의 숨통이 트이게 할 수 있다. 통일부가 “방북이 허사가 될 수 있다”는 북한 반응에 유감을 표시하면서도 “이 여사의 방북에 필요한 지원을 하겠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힌 것은 남북대화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광복 70년인 올해를 남북이 제대로 된 대화조차 못한 채 보내버리면 남북 화해는 더 멀어질 것이다. 남한에도 북한에도 불행한 일이다. 정부는 이 여사의 방북이 실현될 경우 박근혜 대통령의 메시지를 포함해 어떤 방식으로 남북관계를 풀어갈지 치밀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희호#방북#협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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