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최원목]21세기 한국에 적용해야 할 리콴유 철학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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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목 이화여대 교수 싱가포르국립대 방문교수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 싱가포르국립대 방문교수
20세기에 대영제국은 국제적 역할을 찾지 못하고 쇠락했다. 21세기 한국은 국제적 역할을 찾고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무슨 역할 말인가? 23일 별세한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가 해답을 제공하고 있다. 1965년 독립한 최빈국 싱가포르를 국가경쟁력 세계 1위의 선진국으로 끌어올린 비결 속에 해답이 있다. 리콴유 회고록에 보면, 그가 국민의 선진의식 개혁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다. 침을 뱉거나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중국인들의 습관을 고치고 시끄러운 소음을 줄이기 위해 명절 때 즐기는 폭죽의 수입을 금지하고 껌 판매까지 불허했다. 제3세계 국가에서 제1세계 시민의식을 갖춘 나라는 반드시 선진국이 된다는 믿음에서였다.

모든 국제사안에 상호공존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는 적극적 통합주의 또한 해답이다. 아세안(ASEAN)을 통한 선린외교, 국제기구와 다자안보 체제에 적극 참여 등은 철저한 실용외교의 계산하에서 펼쳐진 것이다. 동남아지역에서 강대국 간 충돌 가능성의 헤징(hedging)과 세력균형(balancing)을 주도하기 위한 것이다. 페드라브랑카 섬의 영유권을 놓고 말레이시아와 영토분쟁을 겪으며 리콴유가 지시한 바는 “국제관계에서 법의 지배를 끝까지 지지하고 서로의 국민감정을 저해하지 않도록 국제재판에 빨리 회부하라”는 교지였다.

리콴유는 국가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철저한 법치주의 전통을 수립했다. 은행계좌 하나 여는 데도 싱가포르에 주소지를 마련했는지 철저히 확인하고 대학교수의 해외출장비 정산에도 증빙 영수증을 통해 몇 번씩 검증한다. 싱가포르에서 엄청난 금융거래가 이루어지는데도 금융사고 한번 나지 않는 이유고, 몇 개 안되는 싱가포르 대학이 모두 아시아 최고인 이유다. 세계에서 가장 법적 안정성이 확보된 나라라야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리콴유 철학의 결과다.

한국은 신뢰 에너지를 끊임없이 분출하는, 지정학적으로는 작지만 글로벌 차원에서는 위대한 네트워크의 허브가 돼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선진국들이 여성 인력의 가사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한 외국인 가사도우미 시장 하나 열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 커피 가공 공장을 세워 막대한 수출 실적을 올리는 네슬레는 스위스를 주요 커피 수출국으로 만들었지만 우리 농업은 아직도 척박한 국내 생산시설에 목매고 정부는 이를 지원해 왔다. 우리 사회의 우수 인력이 법조인이고 의사인데, 세계적인 국제변호사와 의사 명단에 한국인이 몇 명이나 끼어 있는가. 여름철 공공건물에 가보면 실내 온도 제한 때문에 업무를 보기 힘들 정도다. 공무원이 머리가 잘 돌아가야 국가가 혜택을 보기에 공공건물의 실내 온도를 20도 이상으로 올리지 못하게 한 리콴유 정책과는 정반대다.

스스로의 정책결정 체계조차 건설적으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정부가 창조경제를 이룰 수 있나. 글로벌 체제에 국민이 갖고 있는 불안감을 대외개방, 경제통합을 적대시하는 문화전쟁으로 전환함으로써 지지율을 올리려는 정치세력, 즉 리콴유가 지적하는 ‘못된 소수(willful minority)’가 유난히 많은 나라. 21세기 한국이 수행할 중요한 역할은, 이러한 모든 사회적 금기와 변화에 대한 저항을 리콴유식 의식개혁 네트워크 활동을 통해 하나하나 극복해 나가는 일이다. 차이는 권위주의적인 리콴유 방식이 아니라 가장 민주적 방식으로 이루어야 한다는 점이다.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 싱가포르국립대 방문교수
#리콴유#철학#대영제국#선진의식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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