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289>물 끝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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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끝
―정홍순(1964∼ )

구기자 꽃피는 억새 너울진 샘
저드래

담자색 꽃물이 흥건히 들어차
두레박으로 질러먹던

두멍 물 길어 채울 때마다
시퍼렇게 솟던 아버지

풀벌레 질금거리던 여름 홀랑
달빛 눈부시게 씻어 당긴 샘

석 질이나 차던 물길 돌아누워
먼저 간 식구들 생각에

물 끝은
늘 그리움을 상처내고 흐른다


짧은 장마가 지났다. 햇빛에 환호작약하는 듯 매미울음 소리 자지러진다. 목이 바짝 마르다. 집에 넘쳐나던 생수가 다 떨어졌다. 이 염천에 무겁기 짝이 없는 생수를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 5층으로 배달시키는 건 못할 짓이라 자제한 결과다. 수돗물이라도 마셔야겠다. 페트병에 든 ‘아리수’는 마시면서 수도꼭지에서 받아 마시는 건 왜 내키지 않는지 모르겠다. 언제부터 물을 사 마셨다고….

‘저드래’는 시인의 고향인 충남 태안군에 있는 마을이다. 구기자 꽃피면 ‘담자색 꽃물이 흥건히 들어차’던 ‘억새 너울진 샘’은 시인에게 고향의 상징이다. 머나 가까우나 마을사람들이 ‘두레박으로 질러먹던’ 깊은 샘. 거기서 ‘풀벌레 질금거리던 여름’이면 달빛 아래 홀랑 벗고 몸을 씻었지. ‘두멍 물 길어 채울 때마다/시퍼렇게 솟던 아버지’, 그 샘은 시인의 혈기방장 젊은 아버지의 상징이기도 하다. 두멍은 물을 많이 담을 수 있는 큰 항아리로 수도가 귀하던 시절의 중요한 부엌세간이다. 지금은 생활의 멋을 아는 호사가의 집에서 부레옥잠을 띄우고 있을 테다. ‘석 질(세 길)이나 차던 물길’ 왜 돌아누웠을까? 그 물을 퍼서 두멍을 채우던 사람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리라. 아니면 무슨 용수로 다 빼가서 고갈된 것일까. 맑고 깊은 샘은 사라지고, 생명의 물 찰랑거리던 아버지도 어머니도 가셨다. 산천이라도 의구하면 지금은 없는 사람들이 상처 없이 그리울라나. ‘물 끝’, 바닥난 샘에 방울방울 샘물인 듯 눈물이 흐르고, 화자의 마음에 그리움이 아릿아릿 피어오른다.

황인숙 시인
#물 끝#정홍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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