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9월 2일 오전 청와대. 창밖에는 제법 굵은 빗줄기가 내리고 있었다. 착 가라앉은 바깥 공기와는 대조적으로 조찬장 안은 밝고 활기 찬 분위기였다. 이날 조찬은 김영삼 대통령(YS)이 세계 최초로 256MD램을 개발하는 데 성공한 삼성전자 연구진을 초청해 격려하는 자리였다.
삼성전자가 1MD램(1986년)과 4MD램(1988년)을 개발할 때만 해도 일본과는 2∼4년이라는 넘기 힘든 기술 격차가 있었다. 하지만 맹렬한 추격전을 벌인 끝에 16MD램 개발(1990년)에서는 그 격차를 다시 수개월로 좁혔고, 64MD램 개발(1992년)에서는 일본과 우열을 가리기 힘든 수준에 올라섰다. 그리고 조찬이 있기 이틀 전 256MD램을 개발해 일본 업체들을 완전히 따돌린 터였다.
조찬 행사는 물 흐르듯 진행됐다. 그런데 끝날 무렵 예기치 않은 ‘작은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256MD램 개발실무 작업을 총괄한 황창규 이사(현 KT 회장)가 무심코 만년필을 떨어뜨린 것이 조찬장을 나가려던 YS의 주의를 잡아끈 것. 배석했던 박재윤 경제수석이 황급히 달려왔지만, 먼저 허리를 굽혀 만년필을 주워든 이가 있었다. YS였다. YS는 황 이사의 양복 윗주머니에 손수 만년필을 꽂아주면서 마치 다짐을 받듯이 나직하게 속삭였다.
“다시는 일본에 지지 말그래이.”
YS의 묵직한 격려가 삼성전자 연구진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됐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이후 삼성전자의 성공담은 알려진 그대로다. 그것이 얼마나 극적인지는 일본 반도체 업체들의 ‘잔혹사(殘酷史)’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1998년 2월 미쓰비시전기와 오키전기가 D램 사업 투자를 중단하기로 결정했고, 그해 9월에는 히타치가 도쿄(東京) 공장을 폐쇄하기로 했다. 이듬해 1월에는 후지쓰가, 3월에는 마쓰시타전기가 D램 사업에서 철수를 선언했으며, 12월에는 NEC와 히타치가 D램 사업을 분리해 엘피다라는 합작회사를 세운다. 유일하게 남은 일본의 D램 업체인 엘피다는 이후 줄곧 내리막길을 걸어 2009년 300억 엔(약 3000억 원)에 이르는 공적자금을 수혈 받고도, 2012년 2월 경영파탄 상태에 이른다.
달도 차면 기운다던가. 잘나가던 반도체도 언제부터인가 스마트폰에 스포트라이트를 내주는 처지가 됐다. 특히 삼성전자의 갤럭시 시리즈와 애플 아이폰 간의 ‘빅2 대혈전’이 세계적인 관심을 끌면서 반도체의 영화(榮華)는 더욱 빨리 빛이 바래는 듯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삼성 안팎에서 반도체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이건희 회장의 결단으로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 진출(당시 이 회장은 동양방송 이사였으며 사재를 털어 한국반도체 지분을 인수)한 지 40주년이 되는 해라는 단순한 의미에서가 아니다.
중국 시장에서 저가 제품으로 무장한 중국 업체들의 공세에 밀려 2분기(4∼6월)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판매실적이 기대를 밑돌면서 ‘구원투수’가 절실하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2분기 사업부문별 영업이익 규모를 보면 반도체는 2조 원 수준으로 4조 원대 후반인 무선사업 부문에 못 미친다. 그러나 스마트폰은 시장의 성장세가 꺾인 반면 반도체 부문은 시장이 팽창하고 있어서 충분히 기대를 걸 만하다. 삼성전자가 하반기(7∼12월) 실적을 끌어올리는 주역으로 반도체를 맨 먼저 꼽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조선, 철강, 정유, 화학, 건설, 해운, 통신 등 한국 경제의 주력 산업들이 어렵다는 뉴스가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지는 요즘이다. 반도체가 이런 우울한 뉴스들을 날려 버리는 청량제가 돼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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