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262>찾습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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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습니다
―이영혜(1964∼ )

부풀린 어깨에 가끔씩 포효 소리 제법 크지만, 낮잠과 하품으로 하루를 때우는, 허세의 갈기 무성한 수사자 말고

해만 넘어가면 약한 먹잇감 찾아 눈에 쌍심지 돋우는, 뱃속까지 시커먼, 욕망의 윤기 잘잘 흐르는 음흉한 늑대 말고

훔친 것도 좋아, 높은 놈 먹다 버린 것도 좋아, 패거리로 몰려다니길 즐겨 하는, 웃음도 비열한 하이에나 말고

수천 권 뜯어먹은 지성인 척 턱수염 도도하게 으스대지만, 강자 앞에선 아첨의 목소리로 선한 초식동물인 척하는, 이중인격 비굴한 염소도 말고

아무 데서나 혀 빼고 군침 흘려 대며, 할 소리 안 할 소리 쓸데없이 짖어 대거나 아무나 물어뜯는, 날카로운 야성의 송곳니는 유전자에서 사라져 버린 지 오래인,잡개는 더욱 말고

높은 하늘 향해
한 자세로 한 몸 꼿꼿이 세운
한 향기 한 품위로 천지를 채운
저 키 큰 금강송 같은

식물성 남자 하나 찾습니다
평생 배필로 삼아
생을 다해 자취도 없이 사라져 그 몸 이룬 탄소 원자 소멸할 때까지
한마음으로 사랑하겠습니다

연락 주시면 후사하겠습니다


배필을 구하는 광고 형식으로 남자들의 지질함을, 행갈이 하기도 아깝다는 듯이 줄줄이 산문으로 성토하는, 아니 한탄하는 화자다. 숫기라고는 하초에만 몰려 있지, 그 무책임과 허세와 위선과 비열함과 약삭빠름이라니! 멀쩡한 여자는 많은데 멀쩡한 남자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게, 결혼을 원하면서 미혼으로 서른을 훌쩍 넘긴 여자 후배에게 마땅한 상대가 없나 머리를 모으는 자리에서 나온 우리 여자들의 중론이다. 일찍이 소설가 우선덕 선생님의 할머니께서도 “세상에 여자만 한 남자는 없다”고 하셨다지. 그럼 이 세상에 멀쩡한 남자는 아주 없단 말인가? 있긴 있으나 일찌감치 ‘여우들’이 낚아채 갔다. 화자가 운문으로 각별히 흠모의 정을 바치는 ‘저 키 큰 금강송 같은 남자’도 이미 장가를 갔을 테다. ‘동물의 왕국’ 인간사여라. 여자들은 다 멀쩡하냐고 입술을 삐죽거리고 실룩거릴 남자들이여, 물론 그렇지 않다. ‘남자 같은’ 여자도 드물지 않다. 뭐, 우리들 여자끼리의 지나가는 이야기.

황인숙 시인
#찾습니다#이영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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