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한기흥]청춘이 그리운 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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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 속에서도 시간은 간다. 계절이 갈마드는 산천에 봄이 홀로 농익어 가고 있다. 예년보다 일찍, 한꺼번에 피었던 개나리 목련 벚꽃이 진 자리를 철쭉 영산홍 라일락이 채웠다. 나무는 연둣빛 움을 틔우는가 싶더니 어느새 녹색 잎으로 성장(盛裝)을 서두른다. 꽃과 신록, 눈부신 햇빛이 어우러진 산을 보고 있노라면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라고 한 피천득 선생의 수필이 떠오른다.

▷가수 안치환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고 노래했다. “그 슬픔에 굴하지 않고 비켜서지 않으며 어느 결에 반짝이는 꽃눈을 닫고 우렁우렁 잎들을 키우는 사랑이야말로 짙푸른 숲이 되고 산이 되어 메아리로 남는다는 것을….” 세월호 사고로 채 피지도 못한 어린 학생들을 떠나보낸 죄스러움 때문에 노랫말조차 달리 가슴에 다가온다. 이 참담한 세상, 어찌 해야 아름답게 살 수 있을까.

▷산에 가면 등산객들의 차림새가 꽃보다 요란하기는 하다. 붉고, 푸르고, 노란 원색의 등산복에 들꽃의 자태가 오히려 무색하다. 삼성패션연구소는 올해 국내 아웃도어 시장 규모를 8조 원으로 예상했다. 작년보다 16% 증가한 전망치다. 업체들은 젊고 매력적인 모델들을 내세워 치열한 마케팅 경쟁을 벌이지만 정작 산에는 중장년층만 북적거리고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기 어렵다. 경쟁에 지친 청년들이 산에 오를 기력과 의욕조차 잃은 것인가.

▷얼마 전 북한산성 입구에서 대남문으로 오를 때 어린이들의 재잘거림이 들렸다. 인근 북한산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이 소풍을 왔다. 해맑은 표정과 산새보다 싱그러운 까르르 웃음에 산행길이 한결 밝아졌다. 담록(淡綠)이 가장 고운 시기이다. 티셔츠에 운동화 차림이면 어떠랴. 더 많은 젊은이들이 가까운 산을 찾아 세상을 씩씩하게 이길 용기를 얻었으면 한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보라.” 학창시절 읽어보았을 민태원의 ‘청춘예찬’을 다시 음미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
#산#꽃#청춘#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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