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청해진해운 유병언 일가,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3일 03시 00분


한국 현대사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끔찍한 대형 참사가 발생했지만 세월호를 운영하는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과 두 아들 대균 혁기 씨는 아직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대통령까지 사고 현장에 나가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고 대화하는데, 이번 사고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선박사의 지주회사 대주주들은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사고가 발생한 다음 날 밤 청해진해운 김한식 대표가 여론에 떠밀린 듯 몇 분간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이 전부였다.

이익만 챙기고 안전 점검은 부실했던 이 회사의 경영 행태를 보면 책임 있는 사과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참사 이전에도 이 회사 선박들의 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데모크라시 5호가 지난달 28일 바다에 안개가 짙게 깔려 있는데도 출항했다가 인천 앞바다에서 어선과 부딪쳐 승객 140명이 바다 한가운데서 불안에 떨었다. 작년 2월에는 오하마나호가 연료 필터 이상으로 5시간 표류했고, 2009년에는 데모크라시호가 해상에서 기관 고장을 일으켰다.

청해진해운은 세월호 선장을 포함한 승무원의 절반 이상을 박봉의 단기 계약직으로 고용했다. 2012년 일본에서 18년 사용한 배를 사들여 무리하게 증축했고, 출항 때 적재한 화물과 차량도 허위로 보고했다. 화물 고정 업무는 전문업체를 쓰지 않고 값싼 업체에 맡겼다.

회사 경영에는 더없이 ‘짠돌이’인 유 전 회장은 ‘얼굴 없는 사진작가’로 활동하며 지난해 프랑스 파리의 오랑주리미술관에서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를 불러 사진 전시회를 열고, 프랑스의 한 마을 전체를 사들였다. 유 씨 일가에 대해 국세청과 금융감독원은 해외 재산 도피, 역외 탈세, 불법 외환거래 의혹 조사에 나섰다. 이번 사고 피해자에 대한 배상금을 확보하는 차원에서라도 이들이 회사 자금을 횡령해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지 않았는지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

청해진해운은 1995년 세모그룹 시절 이후 지금까지 인천∼제주 항로를 독점 운영했다. 여객기의 경우 같은 노선을 놓고 여러 항공사가 경쟁한다. 유독 해운업계에서 해양수산부가 노선별로 수십 년간 독점권을 주는 이유를 알 수 없다. 1990년 한강유람선 사고, 1997년 부도를 냈던 회사의 대주주가 이런 특혜를 얻은 배경이 무엇인지, 그동안 공무원들과 유착 및 비리는 없었는지 조사할 필요가 있다. 해외 해운업계에서도 “같은 업계라는 것이 부끄럽다”는 반응이 나온다. 몇몇 부도덕한 기업으로 인해 다른 건전한 기업들까지 도매금으로 매도당하게 된다. 정부는 해운업계의 불량 기업들을 솎아내는 데 팔을 걷고 나서야 한다.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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