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의 짧은 소설]<6>출마하는 친구에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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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이기호 소설가
이기호 소설가
내 친구 진만이에게.

전화를 할까, 직접 만나서 얘기를 할까, 고민하다가 이렇게 편지를 쓴다. 너도 이미 눈치 채고 있겠지만… 그래 진만아, 우리 친구들 모두 지금 네 전화를 피하고 있는 게 맞아. 네 문자가 오면 확인도 안 하고 지워버리기 일쑤고, 심지어는 수신 거부 해놓은 친구도 몇 명 있다고 하더라. 너는 좀 아프겠지만 그게 사실이야. 난 지금 사실만 얘기하려고 해.

진만아.

네가 4년 전 시의원 선거에 나왔던 때를 기억해. 그땐 우리 친구들 모두 놀라서 술자리마다 네 이야기를 하곤 했어. 그도 그럴 것이 넌 정치니 선거니 하는 것들과 무관하게 살아온 평범한 40대 초반의 가장이었잖니. 더구나 그때 넌 막 숯불돼지갈비집을 개업해서 정신없이 숯을 만들고 있을 때였고…(이런 말은 굳이 하지 않으려 했지만, 그때 우리가 너희 갈비집 매상 올려주기 위해서 동창회니 직장 모임이니 모두 다 그곳에서 한 거 기억나지? 그냥 말이 그렇다는 얘기야).

모두 너의 선택에 의아해하고 있을 때, 성진이가 그러더라. 걔가 왜 이번에 입주한 아파트 동대표가 됐잖아. 그때부터 바람이 좀 들어갔나 봐. 그제야 우리도 좀 이해되는 게 있더라. 왜 그때 네가 입주한 아파트 문제 때문에 지방신문에서도 대서특필하고, 꽤 시끄러웠잖아. 국도 변에 지어 놓고 약속한 방음벽도 세워주지 않는다고, 길 건너편 시멘트 공장에서 날아온 분진 때문에 집에서도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아파트 입주민들이 시청에 몰려가 데모도 하고 그랬잖아. 아마 그 문제 때문인 거 같아. 아파트 사람들이 걔 등을 떠민 것도 있고. 성진이가 그렇게 말하자, 우리 모두는 고개를 끄덕였지. 충분히 네 출마 이유가 납득이 된 거였어.

진만아.

그때 우리 친구들 모두 네 선거를 열심히 도왔던 거 기억나지? 선거 자금은 못 도와줘도 성심성의껏 몸으로 때웠잖아. 주말이면 너와 함께 명함도 돌리고, 네 등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박진만! 박진만!’ 구호도 외치고(그때 내가 네 선거 캐치프레이즈 쓴 것도 잊지 않았지? ‘관흥동의 숯불이 되겠습니다!’ 이거 내가 정해준 거잖아), 심지어 성진이는 돼지 인형 탈 쓰고 하루 종일 육교 위에 서 있기도 했잖아.

진만아.

그래, 그때 네가 그 선거에서 상처받은 거 이해해. 우리도 정말 충격을 받았으니까. 우린 정말 네가 120표를 받을 줄 몰랐어. 아니, 아파트 입주 세대만 600가구가 넘는데, 어떻게 그 정도 표밖에 받지 못했을까. 성진이는 그러더라. 자기 조카가 학교 학생회장에 나갔다가 3등으로 떨어졌는데, 그때도 200표 넘게 받았다고…. 아마 네가 전국에서 꼴찌를 한 거 같다고…(이런 말까진 굳이 하고 싶지 않았는데, 네가 선거 이후 ‘백만이’로 친구들 사이에서 불린 건 그런 사정 때문이었어).

백만아. 아니, 진만아.

우리 친구들 모두 선거 이후, 네가 얼마나 힘든 시절을 보냈는지 잘 알고 있어. 아파트도 팔고 다시 세입자 신세가 된 것도, 숯불돼지갈비집도 정리하고 작은 통닭집으로 업종 전환한 것도, 다 선거 때 쓴 비용 때문이었겠지. 그러면 진만아…. 이제 정신 차리고 장사에 매진해야지, 또 선거라니 이게 무슨…. 이번엔 출마하는 명분도 없잖니?

성진이는 그러더라. 네가 이번엔 조류독감 때문에 출마하려는 거 같다고…. 그게 사실인지 농담인지, 알 수 없지만, 아니, 진만아. 그런다고 죽은 닭들의 영혼이 위로되겠니? 우리 동네엔 양계장 하는 집도 없잖니? 닭들은 투표권도 없잖니?

진만아.

친구들 모두 네 전화를 피하는 건, 네가 제발 정신을 차리길 바라는 마음에서야. 성진이는 다시 닭 인형 쓰고 동네를 돌아다녀야 하는 건 아닐까, 걱정을 하고 있어. 나는 차라리 네가 친구들 앞에서 솔직하게 고백을 했으면 해. 통닭집은 잘 안 되고, 시의원 연봉은 꽤 괜찮으니, 업종 전환 차원에서 출마하는 거라고…. 그러면 우리 친구들도 너를 도와줄지 모르잖니?

하지만, 그래도 친구야.

나는 이번에 네가 출마하지 않기를 진정으로 바란단다. 내 말 서운해하지 말고, 꼭 새겨들었으면 해. 우리가 통닭집 자주 갈게. 선거 끝나면 맥주나 한잔하자.

이기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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