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성원]안철수는 생각하지 마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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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 논설위원
박성원 논설위원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4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 도중 한참 동안 정당론을 설파했다. “신당 논의가 가시화하고 있다. 싸우지 말고 잘하자는 것으로는 정당의 필요충분조건을 다 채웠다고 할 수 없다. 이런 정도라면 당내 혁신의 문제이지, 새로운 정당 출현의 명분으로는 미흡하다.”

국민을 상대로 여당이 펴나갈 정책 방향을 밝히는 자리가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신당 성토 무대로 변한 듯했다. 황 대표는 “새로운 정당이라면 자신만의 영역이 분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합당이니 연대니 하는 말이 나오게 된다”는 말도 했다. 제발 민주당과 연대하지 말아 달라는 ‘호소’처럼 들렸다. 6·4지방선거를 ‘2012년 대선의 완결판’으로 만들겠다(홍문종 사무총장)는 집권당이 막상 선거에서 신당과 민주당이 손을 잡아 일대일 구도가 되면 어쩌나 안달복달하는 듯한 모습이다.

안철수 신당에 대해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훈수 중에는 민주당이 압권이다. 문재인 의원은 “안철수 신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내서는 안 된다”고 했다. 2011년 안 의원의 양보로 서울시장 자리에 오른 박원순 시장을 보쌈해간 정당에서 나온 말치곤 너무 노골적이다. 더욱이 안 의원을 단일화 협상에 끌어들여 후보직을 사퇴시키고도 본선에서 진 문 의원이 안철수 신당더러 서울시장 후보를 내지 말라고 압박하는 걸 어떻게 봐야 할까.

신당을 향해 “야권 분열로 새누리당에 어부지리를 안겨줘선 안 된다”며 습관처럼 연대(후보단일화)를 보채는 민주당 사람들에 대해 어떤 신당 사람은 “거의 스토커 수준”이라고 묘사했다. 126석의 민주당이 스스로의 실력으로 평가받겠다는 생각 대신 연대 전략을 ‘조자룡 헌 칼’ 쓰듯 하다가는 입지가 야권의 반 토막으로 좁아들 수 있다.

원내 1, 2당이 이처럼 안철수 신당을 둘러싼 정치게임에만 몰두하면서 정작 지방선거에서 이슈로 떠올라야 할 문제들은 뒷전에 밀리고 있다. 임기조차 못 채우고 날아가는 자치단체장이 6명 중 한 명꼴인 부패 문제, 방만하게 운영돼 파산제 도입이 시급한 지경인 재정 문제의 해결 방안도 뒷전이다. 지방자치에도 유익하고 중앙정치 개혁에도 도움이 될 공유가치 창출(CSV·Creating Shared Value)은 꿈도 꾸기 어려운 실정이다.

미국의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저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미국 민주당이 코끼리(미국 공화당의 상징)를 말하면 말할수록 그 프레임에 갇히게 되고, 선거는 결국 공화당의 승리로 귀착된다고 설파했다. 틈만 나면 안철수를 때리며 민주당과 떼어 놓으려는 새누리당이나, 한편으로 견제구를 날리며 한편으론 손잡자고 매달리는 민주당이 꼭 그 꼴이다. 양당이 더이상 안철수는 생각하지 말아야 비정상으로 흐르고 있는 지방선거가 정상화의 출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안철수 의원 측의 모호한 태도도 지방선거의 실종에 한몫하고 있다. 안 의원은 “(민주당과) 정치공학적 연대는 없다”면서도 “국익과 민생을 위한 연대라면 가능하다”고 했다. 정치공학적 연대와 국익·민생 연대가 어떻게 다른지 모르겠다.

그는 어제 ‘새정치 플랜’ 기자회견에서도 “새정치는 완성된 결과가 아니라 끊임없이 마음과 소리를 담아내는 과정”이라고 했다. 시중의 3대 미스터리 중 하나라는 ‘안철수의 새정치’가 뭔지 구체적 내용을 내놓을 것이라던 예고와 달리, 회견을 보니 “더욱 모르겠다”는 게 정치권의 반응이다.

국민은 20년 가까이 들어온 ‘낡은 정치 타파’ 같은 구호로 감동받지 않는다. 차라리 안 의원이 지금까지의 안철수는 생각하지 말고 서울시장 후보로 직접 뛰어들어 서울부터 뜯어고치겠다고 나선다면 새정치가 손에 잡힐 수도 있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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