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문병기]유대상인-화상의 성공비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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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기 경제부 기자
문병기 경제부 기자
유대인과 중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장사에 밝은 민족으로 꼽힌다. 세계 금융가를 장악하고 있는 유대인의 상술(商術)은 과학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일찍이 국가를 잃고 유럽과 중동 전역에 퍼져 살았던 민족이라 정보력이 강하고 셈에 밝다. 돈이 될 만한 장사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데 능하다 보니 일단 사업을 벌이면 웬만큼 손해를 보지 않고서는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할인해 줄 바에는 팔지 않는다”는 배짱도 보통이 아니다.

유대인 못지않게 세계 경제계에 영향력을 떨치고 있는 중국인 화상(華商)들의 성공비결은 ‘느긋함’이다. 화상들은 찾아온 손님에게 좀처럼 얼마에 팔고 싶은지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느긋한 태도로 상대를 조급하게 만들면서 거래를 유리하게 이끌어가는 상술로 정평이 나있다.

한국인의 상술은 어떨까? ‘한국인의 부자학’(김송본 지음)에 따르면 한국 상인들은 팔리지 않는 물건은 과감한 에누리로 ‘떨이’를 한다. 이런 방식은 자금회전이 빠르고 사업의 성패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반면 ‘속전속결’로 결판이 나다 보니 손해를 버티며 대반전을 이뤄내는 사례는 많지 않다.

최근 공공기관들의 부채 감축 방안을 취재하면서 문득 이런 상술의 차이가 떠올랐다. 정부는 조만간 각 공공기관들의 국내외 자산 매각을 뼈대로 한 공공기관 경영 정상화 계획을 내놓을 예정이다. 공공기관들은 핵심 업무와 관련 없는 자산이나 지분을 내다파는 것은 물론 자회사 지분 역시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지분을 남기고 최대한 매각해 부채를 줄여나갈 방침이다. 외국 광구를 사들였다 손해를 보고 있는 에너지 공기업들 역시 대대적인 해외 자산 매각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자산 매각을 앞두고 공공기관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경기가 시원치 않은 판에 공공기관들이 앞다퉈 부동산이며 지분 매물을 쏟아내면 과연 제값을 받고 팔 수 있겠느냐는 걱정이다.

해외 광구를 매각해야 하는 한 공기업 관계자는 “국내 공기업들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외국 기업들은 가격이 더 떨어질 때까지 기다릴 것”이라며 “현재로서는 팔려고 해도 사겠다는 곳이 없다”고 토로했다.

이렇다 보니 급히 달러를 마련하기 위해 대대적인 자산 매각에 나섰다가 큰 손해를 봤던 외환위기 직후의 상황이 반복되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당시 공기업들은 해외 광구 20여 곳을 싼값에 내다팔았다가 이를 사들인 일본이나 중국 기업들이 몇 년 뒤 자원가격 급등으로 대박을 터뜨리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물론 국민 경제에 큰 부담이 될 공공기관 부채를 그냥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공공기관들의 ‘복지부동’을 우려해 경영 정상화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자 하는 정부의 태도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장사에는 때가 있다. “무조건 내다팔라”고 등을 떠미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아무쪼록 정부가 공공기관들의 부채를 효과적으로 줄이면서도 손해를 최소화하는 정밀한 대책을 마련해주길 기대해본다.

문병기 경제부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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