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여성 은행장이 탄생했다. 금융위원회는 그제 기업은행 신임 행장에 권선주 부행장(리스크관리본부장)을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했다. 행원에서 출발한 그가 경제 관료들과 경합해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른 것이라 더욱 빛난다. 은행권의 마지막 유리 천장이 깨지면서 전 직원 중 50%가 넘는 여직원들에게 새로운 꿈이 생겼다. 여성 인재의 활약이 금융선진화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최근 첫 여성 검사장이 탄생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검찰에서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던 조희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이 서울고검 차장에 임명됐다. 2000년대 들어 법무부 장관, 대법관, 헌법재판관에 여성이 등용됐으나 검사장에 오른 여성은 처음이다. 사법연수원 첫 여성 검찰교수, 최초의 여성 지청장, 수사 부서를 지휘한 첫 여성 부장검사를 지낸 그는 다시 한 번 높은 벽을 넘어섰다. 전체 검사의 25%에 이르는 486명의 여검사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고위직 진출은 개인의 성공담을 넘어, 보이지 않는 장벽이 점차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하지만 공공과 민간을 구분할 것 없이 갈 길은 멀다. 한국 여학생의 대학 진학률(74.3%)은 남학생(68.6%)보다 높지만 여성 대졸자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82.6%보다 훨씬 낮은 62.5%로 최하위다. 올해 3월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유리 천장’ 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100점 만점에 약 15점, 조사 대상 26개국 중 꼴찌를 차지했다. 45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미국 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 대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1.9%로 43위였다.
여성 인력의 활용은 국가 경쟁력 강화의 필수 조건이자 박근혜 정부의 핵심 경제목표인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중요한 과제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첫 여성 수장으로 최근 방한한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는 “여성의 낮은 경제활동 참여율과 남녀 임금 차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를 해결하지 못하면 성장률이 2%대로 추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회에 진출한 여성들이 결혼 이후 출산과 육아의 벽을 넘지 못하고 일터를 떠나는 경력 단절은 국가적인 낭비다. 직장에서 여성 근로자에게 동등한 기회와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경제의 역동성을 살리는 길이다. 여성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여성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데 국가와 기업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