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197>인성의 비교급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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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의 비교급
―윤병무(1966∼)

영리한 것보다는
정의로운 게 낫고
정의로운 것보다는
착한 게 낫다

하지만
사상체질(四象體質)도 두 가지쯤 섞여 있듯이
인성(人性)도 짬짜면이라 탄식이 이어진다

정의롭지 못한 영리함의 저속함이여
영리하지 못한 정의로움의 허망함이여
착하지 못한 정의로움의 역겨움이여
정의롭지 못한 착함의 막연함이여

그럼에도 굳이 하나만 골라 비교하자면
영리한 것보다는 정의로운 게
정의로운 것보다는 착한 게 낫다

보이는 것이 진실이 아니다
보는 것이 진실이다


이 시가 실린 윤병무 시집 ‘고단’에는 고되고 외로운 삶의 양태들이 따뜻하고 슬프게 그려져 있다. 시인의 착한 마음과 예민한 감각이 도처의 불우로 거미줄처럼 출렁거린다. 그런데 어딘지 생의 한 끈을 놓아버린 듯한, 열의를 잃은 듯한, 허탈함이랄지 달관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화자가 앞날이 막막할 수밖에 없는 이 시대의 40대 실직 가장이어서일까. 화자의 피로, 불안, 무력감, 당혹이 예사롭지 않다. 그러나 화자는 엄살을 부리지도 않고 비명을 지르지도 않는다. 그저 담담히 술회할 뿐이다. 그의 깊은 연민은 타인을 향해 있다. ‘그래서 마음은 닫혀도/길은 열려 있는 것이네’(시 ‘행인’에서). 아, ‘마음은 닫혀도!’ 닫힌 마음은 다친 마음일 테다. 다쳐도 뻗어줄 손이 없으면 닫힐 테다. 그러나 마음은 다쳐도 정신은 다치지 않았어라.

‘정의롭지 못한 영리함의 저속함이여/영리하지 못한 정의로움의 허망함이여/착하지 못한 정의로움의 역겨움이여/정의롭지 못한 착함의 막연함이여’ 시인이 한 상 차려놓은 이 절묘한 인성 ‘짬짜면’ 맛이여! 우리 사회는 아이들에게 이 시와 달리 가르친다. 영리함과 정의로움과 착함, 그중에 제일은 영리함이고 착함은 제일 나중이라고. 어떤 부모는 자기 아이가 남에게 착하면 화를 낸다. 아이들아, 착하고 정의로운 ‘짬짜면’이 되어라. 그리고 네 영리함으로 마음에 새겨라. 보이는 것은 진실이 아니고 보는 것이 진실이라는 걸.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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