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문형표, 복지부 장관 자격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특수업무경비로 콩나물 샀다가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낙마
법인카드로 숙주나물 산 장관이 복지 부정수급 척결할 수 있겠나
인사실패 교훈 모르는 대통령… 신뢰 잃으면 정책 성공 어렵다

김순덕 논설위원
김순덕 논설위원
‘사초 실종’에 비하면 사소한 문제일 수 있다. 좀 치사한 일이기는 해도 늘 그래왔던 비정상적 관례로 여길 수도 있었다. 법인카드를 개인적으로 썼다는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경우다.

새누리당은 지난주 민주당 문재인 의원을 겨냥해 약속대로 정치적 책임을 지라고 매섭게 공격했다. 7월 26일 국가기록원에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나오지 않자 문재인이 “혹여 제가 몰랐던 귀책사유가 있다면 상응하는 책임을 질 것”이라고 한 말을 걸고 나왔다.

문 후보자로 인해 새누리당은 ‘약속’을 들먹이기 민망한 처지가 됐다. 그가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직 중에 법인카드를 사적(私的)으로 쓴 사실이 밝혀지면 장관직 관둔다고 지난주 분명히 말했기 때문이다.

인사청문회를 통해 문형표에 대해 알게 된 건 그의 아들 생일(1월 16일)과 아내 생일(3월 24일)뿐이라는 허무개그가 나돈다. 2008년부터 4년간 그날마다 그는 힐튼호텔과 조선호텔 등에서 꼬박꼬박 법인카드를 썼다. “아들과 배우자 생일에 전부 남들과 일하며 식사했느냐”는 질문에 제대로 해명을 못했다고 새누리당도 인정했을 정도다. 법인카드 사용 권역을 규정한 작년부터만 따져도 98회 1468만 원을 서울 서초구와 강남구, 주로 집 근처에서 썼다고 민주당 이목희 의원은 개탄했다.

다른 시기, 다른 장관직이라면 또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복지예산 증가에 정부 부채까지 맞물려 한 푼의 나랏돈도 아쉬운 때다. 지난주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공공기관을 향해 “파티는 끝났다”고 일갈했다. 오늘 박근혜 대통령도 고강도 개혁을 예고할 태세다.

KDI 같은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에는 문 후보자도 한몫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가 법인카드로 좋은 아빠 역할을 하기 직전인 2007년 말 국가청렴위원회(현 국가권익위원회)는 공공기관 법인카드의 사적 이용을 금지하는, 투명성 제고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을 내놨다. 그러고도 문 후보자 같은 행태가 계속되자 2009년과 2011년 “클린카드 사적 사용은 부패행위”라며 자택 근처 사용 제한을 누누이 강조했다.

위에서 이렇게까지 나섰는데 아래에서 조심하는 척도 안 했다는 건 허수아비 정부이거나, 공조직이 뼛속까지 썩었거나, 문 후보자에게 공인의식이 없다고 봐야 한다. 현 부총리도 찔리지 않는지 궁금하다. 그가 KDI 원장이던 지난해 기관장 평가에는 법인카드 사용의 지속적 문제점이 언급돼 있다. “일부는 규정 위반을 인정하면서도 억울해하고 있어 리더십 경영이 필요하다”고 지적됐다.

그 부총리에 그 장관이라면 ‘신의 직장’ 돈 잔치 놀음이 개혁 가능할지 의심스럽다. 정부가 복지사업 부정수급 척결 태스크포스를 차렸지만 또 허수아비가 될 공산이 크다. 기초연금 20만 원 받기 위해 국민연금을 탈퇴할지 말지 고민하는 게 보통사람들이다. 서민은 구경도 못해 본 법인카드로 그들은 호텔 밥값 20만∼30만 원을 척척 긁었다. 어차피 먼저 본 사람이 임자인 눈 먼 돈, 못 빼먹으면 나만 바보라는 억울함이 전염병처럼 번질 판이다.

연금개혁에 대한 문 후보자의 전문성과 인품은 많은 사람들이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장관 임명장을 받아선 안 될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대통령이 ‘이동흡 사태’를 겪고도 인사 실패의 교훈을 외면한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확인하고 싶지 않다.

1월 3일 헌법재판소장에 지명된 이 후보자는 특정업무경비 유용이 드러나면 사퇴한다고 공언하고도 41일을 질질 끌어 새 정부 출범에 어두운 뒤끝을 남겼다. 3억 원이 넘는 돈인데도 새누리당은 결정적 하자가 없다고 싸고돌았다. 그가 주말과 휴일 집 근처 음식점에서 쓴 법인카드 결제비가 45회 400여만 원이었다.

영국에서는 지난주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런던 시티 ‘로드 메이어’ 주최 만찬에서 성장과 개혁을 위한 긴축정책을 연설했다가 호된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금 촛대에 은 식기가 번쩍거리는 호화판 만찬장 사진이 공개돼서다. 그래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나흘 전 발표한 정부 신뢰지수에서 영국은 우리보다 배나 높았다.

정부가 신뢰를 잃으면 아무리 좋은 정책도 먹히지 않는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 말마따나 특정업무경비를 콩나물 사는 데 쓰면 안 된다면, 법인카드로는 숙주나물도 사선 안 될 일이다. 아니면 대통령은 “공공개혁 할 테니 복지예산 통과 바란다”는 말이나 말아야 한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복지부장관#인사청문회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