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SNS에서는]“하기실음 관두등가, 일직집애가고십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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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을 중심으로 퍼져 나간 이야기들을 묶어 재구성한 것입니다.

40대 남성 A 씨는 평범한 샐러리맨.

오늘도 회의가 꼬리를 뭅니다. 이 회사 회의실 한가운데에는 ‘하기실음 관두등가(河己失音官頭登可)’라는 사훈이 크게 걸려 있습니다. 한문을 우리말로 풀면 “강이 소리를 내지 않고 묵묵히 흘러가는 것처럼 열심히 일해야 승진할 수 있다”는 뜻. 그러나 직원 대부분은 저 말을 ‘하기 싫으면 그만두라’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할 일이 잔뜩 쌓인 A 씨는 회의 때문에 업무 흐름이 끊어져 불만입니다. 그는 조용히 업무수첩에 ‘일직집애가고십다(日職集愛加高拾多)’고 썼습니다. 조용히 홀로 뜻풀이. ‘하루 일은 애정을 모아서 해야 능률도 올라가고 얻는 것도 많다’.

물론 속마음은 일찍 집에 가고 싶다는 거였죠. 딸아이가 공부하는 ‘마법 천자문’을 훔쳐 읽으면서 다시 한자를 공부한 A 씨였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A 씨 동기가 자기 수첩에 ‘일직가서모하시개(溢職加書母何始愷)’라고 써서 내밉니다. ‘일거리가 넘치는데 서류 들고 집에 가봤자 아이 엄마가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 실제로는 집에 일찍 가봐야 딱히 할 일도 없을 테니 퇴근길에 소주나 한잔 하자고 제안한 것이었죠. A 씨는 뼈 골(骨)을 쓰고 그 위에 한 획을 더해 답했습니다. 콜!

두 사람은 퇴근 후 삼겹살집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습니다. 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가 몇 잔 돌았을 때 A 씨가 지갑을 꺼내며 말했습니다. “나는 늘 아내 사진을 지갑에 가지고 다녀. 그리고 괴로운 일이 생길 때마다 이 사진을 꺼내 봐. 그러면서 자위하곤 해. ‘이 여자가 내 아내다. 세상에 이보다 더 괴로운 일이 있을까.’”

‘간단하게’로 시작했던 두 사람의 술자리는 3차까지 이어졌고 A 씨는 만취한 뒤에야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몸 중심을 잡지 못해 신발장 위에 있던 도자기를 깨고 말았습니다. 현관에 구토까지 하고 마룻바닥에 대자로 뻗은 A 씨. 아내는 그를 낑낑 일으켜 세워 침대에 눕히고 뒷정리까지 책임졌습니다.

다음 날 눈을 뜬 A 씨는 어젯밤 일이 떠올라 무서웠습니다.

아내가 엄청 화를 낼 게 당연한 일이었으니까요.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그때 탁자 위에 놓인 메모 한 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여보, 당신이 좋아하는 북엇국 끓여 놨어요. 운동 다녀와서 봐요. 사랑해요♡”

어리둥절한 A 씨가 딸에게 물었습니다.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딸이 답했죠. “엄마가 아빠를 침대에 눕히고 옷을 벗기려고 하니까 아빠가 그러던데. ‘저기요, 나 혼자 그냥 내버려두세요! 나 결혼한 남자라고요!’” 깨끗하게 청소한 현관을 보며 A 씨는 ‘남존여비(男存女悲)’를 떠올렸습니다. 남자는 존재만으로 여자를 비참하게 한다는 현대식 고사성어죠.

아내가 끓여준 북엇국으로 해장하고 기분 좋게 출근한 A 씨. 회의실에 들러 사훈 나머지 한 줄도 확인했습니다. ‘가기실음일하등가(街己失音壹河登可)’. 원래 한문 뜻이야 어찌됐든 아내 딸하고 오순도순 살려면 더 열심히 일하자고 다짐한 A 씨였습니다.

A 씨는 자리에 앉자마자 아내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자기가 건강을 생각해 살을 뺀다면 반대하지는 않겠어. 하지만 나는 자기가 세상에서 1g이라도 사라지는 게 싫은 걸.”

유부남 여러분, 오늘 퇴근길에는 아내에게 꽃 한 다발 사서 선물하면 어떨까요? 청계천변 꽃가게를 지나다 보니 소국(小菊)이 참 좋더군요.

황규인 스포츠부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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