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최근 폴란드 크라쿠프에 있는 유대인 수용소 아우슈비츠를 방문했다. 수용소에는 무참히 잘려진 머리카락이 수북이 쌓여 있었고 가스실 벽에는 손톱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집단학살의 현장인 아우슈비츠를 가장 많이 찾는 사람들은 독일인이며 그중 대부분은 어린 학생들이다. 그들은 해마다 이곳으로 수학여행을 온다. 그날도 수용소에는 많은 학생이 있었다. 표정은 진지했고, 걸을 때도 소리를 내질 않았다. 독일은 그렇게 대를 이어 반성한다. 그런데 유독 아우슈비츠를 찾지 않는 나라가 있다. 일본이다. 일본 정치인이나 수학여행단의 모습은 보지 못했다는 게 수용소 안내원의 설명이다.
우리는 일제로부터 36년간 압제를 당한 뼈아픈 역사의 현장을 어떻게 보존하고 있는가. 조선총독부가 있었던 서울에선 곳곳에서 만행이 저질러졌다. 그 역사의 현장 대부분이 무관심 속에 묻혀 있다. 서대문 형무소에 감방과 고문실, 사형장이 전시되어 있을 뿐이다. 조선의 국모 명성황후가 일본에 의해 처참하게 시해된 곳이 경복궁 안에 있는 건천궁이다. 그런데 건천궁은 헐린 지 오래되었고, 그 자리엔 ‘명성황후조난지지’라는 표석만 있을 뿐이다. 잔혹하고 처참했던 역사를 생생하게 알려주기 위해선 시설을 보여주는 데만 그쳐선 안 된다. 예술(연극, 뮤지컬, 홀로그램 등)과 접목해야 한다. 과거의 역사가 현재의 예술과 만나게 해주어야 한다.
무엇보다 일본인들의 반성을 이끌어내기 위해선 일본인들이 이런 역사의 현장을 찾도록 해야 한다. 독일처럼 일본 학생들이 수학여행으로 식민지 역사 현장을 찾도록 해야 한다. 일본의 미래를 이끌어갈 학생들에게 선조들이 저지른 잘못을 낱낱이 보여주고 다시는 이웃 나라를 침략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런 일은 교육자들이 역사적 사명감을 갖고 추진해야 한다. 우리나라 시도교육청이 주관해 일본 교육위원회와 자매결연을 하고 초중등학교 수학여행단을 초청하는 것이다. 또한 일본의 지한파 언론인, 학자, 교육자, 예술인을 초청해 식민지 역사의 현장을 보여주고 그들로 하여금 역사를 반성하는 칼럼을 쓰게 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관련 연구와 교육을 하도록 하고, 작품을 발표하도록 해야 한다. 이런 일은 정부가 앞장서서 하루속히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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