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인 남덕우 전 국무총리가 그제 8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그는 가난 극복과 경제 발전을 필생의 과업으로 삼았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전을 현실로 옮긴 한국 경제의 산증인이었다. 서강대 교수로 재직 중 1969년 박 전 대통령에 의해 발탁된 그는 박정희정부에서 재무부 장관과 경제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으로 9년 2개월 동안 일하며 ‘박정희노믹스’를 완성했다. 1980년대에는 국무총리와 한국무역협회장을 역임했다.
그는 경제 관료로 재임하면서 사채 동결, 증권시장 개혁, 부가가치세 도입, 중화학공업 육성, 사회간접자본 확충, 중동시장 진출 등 굵직한 경제 개혁 조치를 주도했다. 부가가치세를 시행해 허약한 세수 기반을 다졌고, 중화학공업 육성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외자 유치를 성사시켰다. 1975년부터 추진한 중동 진출은 제2차 석유 파동을 극복하는 마중물이 됐다. 그가 이끈 정부 경제팀의 혜안과 헌신적 노력은 세계가 찬사를 보낸 ‘한강의 기적’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남 전 총리는 일선에서 물러난 뒤 고령임에도 2005년 한국선진화포럼을 설립하고 세미나 활동을 통해 한국 경제를 위한 고언(苦言)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경제 성장 과정에서 물가와 부동산 투기를 잡지 못하고 기업구조 개혁, 국민에 대한 경제교육 등의 과제를 완수하지 못한 점을 아프게 생각했다. 그는 “경제 발전에 시동이 걸리면 정부 역할을 시장경제의 자율 기능으로 넘겨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시장경제주의자였다.
‘한강의 기적’은 전문성이 뛰어난 경제 관료, 도전정신으로 무장한 1세대 기업인, 결단과 추진력을 가진 정치 리더십의 합작품이다. 박 전 대통령은 정치권이 경제팀을 흔들 때마다 “정치는 내가 맡을 테니 당신들은 경제 개발에 전념하라”며 힘을 실어 주었다. 부가가치세 도입의 여파로 1978년 총선에서 참패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그를 20일 만에 경제특보로 다시 부르기도 했다. 남 전 총리는 2009년 동아일보에 연재한 회고록에서 “빈번히 경제장관을 바꾸는 것은 대통령에게 확고한 목적의식이나 경륜이 없거나 사람 보는 눈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말을 남겼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1998년 외환위기 이후 15년 만에 일본보다 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제조업과 서비스업, 수출과 내수의 두 날개로 도약하는 새로운 경제를 일으켜 후대에 물려줄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한국 경제가 활력을 되찾으려면 맨땅에서 경제를 부흥시킨 제2, 제3의 남덕우가 나와야 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