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청와대 부실 검증이 부른 김학의 차관 사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22일 03시 00분


김학의 법무부 차관이 어제 차관 취임 엿새 만에 사표를 냈다. 김 차관은 건설업자 윤모 씨의 성접대 사건과 관련해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니지만 저의 이름과 관직이 불미스럽게 거론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저에게 부과된 막중한 소임을 수행할 수 없음을 통감하고 새 정부에 누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직을 사임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저는 이제 자연인으로 돌아가 반드시 진실을 밝혀 엄중하게 책임을 묻고 명예를 회복할 것”이라고 했다. 김 차관은 어제 0시 무렵 법무부를 통해 “성접대를 받거나 동영상에 찍힌 바가 없다”며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가 만 하루도 되지 않아 사표를 냈다. 김 차관이 과연 성접대를 받지 않았는지는 경찰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할 것이다.

윤 씨의 성접대 대상에 오르내리는 사람은 전직 국회의원과 수도권 병원장, 유명 피부과 원장, 전직 국장급 공무원, 전직 사정당국 국장급 간부, 경찰 고위층, 언론사 간부 등이다.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윤 씨의 별장에서 ‘난교(亂交) 파티’를 벌였다는 의혹도 있다. 건설업자는 고위층의 약점을 잡아두기 위해 동영상을 찍은 것으로 보인다. 이 동영상을 분석하면 사건 관련자들의 신원을 어렵지 않게 규명할 수 있을 것이다. 성접대와 함께 구체적인 청탁이 오갔다면 뇌물죄에 해당한다. 권력과 문란한 성이 뒤얽힌 이 사건은 사회지도층의 타락상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경찰은 사건의 실체를 한 점 의혹 없이 낱낱이 밝혀야 한다. 건설업자 윤 씨의 강원 원주 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고, 이곳에 드나든 고위 공직자와 병원장 언론사 간부가 누구이며 성접대를 받은 공직자들이 윤 씨에게 어떤 보답을 했는지도 규명해야 할 것이다. 김 차관이 억울하다면 경찰의 수사에 적극 협조해야 명예를 회복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은 김 차관이 임명되기 수주 전부터 경찰 주변에서 소문이 퍼졌다. 그런데도 인사검증을 맡은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은 “사실이 아니다”는 본인의 말만 듣고 제대로 검증을 하지 않았다. 사건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 이후에야 경찰로부터 보고를 받아 박근혜 대통령에게 수사 상황을 설명했다고 한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소문의 진위가 가려질 때까지는 차관 임명을 보류했어야 옳다. 법무부 차관이 청와대에서 임명장을 받은 지 불과 엿새 만에 옷을 벗은 작금의 상황에 대해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은 부실 검증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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