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쟁론]담뱃값 인상 추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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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이 2500원인 담뱃값을 2000원 더 올리는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외국에 비해 지나치게 싼 국내 담뱃값을 세율 인상을 통해 대폭 올리겠다는 뜻입니다. 올리고 싶었지만 그동안 선거 때문에 못 올렸던 정부도 내심 찬성하고 있습니다. 흡연자들은 당연히 반발합니다. ‘국민 건강을 위해 담뱃값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차라리 복지 확대에 필요한 재정을 흡연자들에게 걷겠다고 솔직히 말하라”고 반박합니다. 건물과 식당 내 흡연금지 구역이 대폭 확대되면서 그동안 쌓였던 흡연자들의 불만이 폭발 지경으로 갈 조짐도 보입니다. “그동안 세금 낼 만큼 냈다”는 흡연자들의 주장에 대해 일부에서는 “담배로 인한 질병 때문에 건강보험 재정이 얼마나 축나는지 아느냐”고 맞받아치기도 합니다. 담뱃값이 인상되면 선진국에 비해 두 배가량 높은 흡연율(47%)이 줄어들까요. 아니면 국민 건강을 핑계로 세수만 더 늘리게 될까요. 찬반양론을 들어 봤습니다. 》
▼ 최소 2000원은 더 올려야 ▼

최은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최은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2011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이 암으로 사망할 확률은 21.6%이며 남자는 27.7%, 여자는 4.2%로 남자가 여자의 7배에 가까웠다. 원인은 여러 가지겠지만 흡연도 상당 부분 차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흡연은 암, 심혈관질환, 호흡기계질환 같은 만성질환의 주요 원인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흡연율은 2007년 이후 정체되어 현재 47% 수준에 머물고 있다. 20%대인 선진국의 흡연율이 매년 줄어들고 있는 것과는 대비된다.

흡연율이 줄지 않는 데는 싼 담뱃값이 일조하고 있다. 담배 규제 정책은 가격 정책과 비가격 정책으로 나뉜다. 가격 정책은 담배 세율을 높여서 담배의 생산과 유통을 규제하는 정책이다. 담배 세율이 높아지면 담배 가격도 높아지게 되므로, 결과적으로 담배 구매력을 낮출 수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1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적정 담배 가격을 추정했을 때 4500원이었다. 2005년부터 가격에 변동이 없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우리나라 담뱃값은 실제 형성되는 가격보다 지나치게 낮은 셈이다. 아무리 못해도 현재 가격(2500원)에서 최소 2000원은 올려야 한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담배 가격은 최하위에 속하는 반면 남자 흡연율은 최고 수준이다.

담뱃값이 올라도 흡연자들이 결국 못 끊기 때문에 금연 효과는 없다는 주장이 있다. 그렇지 않다. 실제로 2004년 말 담뱃세 500원 인상이 결정되자 성인 남자 흡연율이 60%에서 51%로 급감했다. 반면 그 이후로 가격이 오르지 않자 흡연율은 정체 상태를 보였다. 가격 정책이 금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반면 비가격 정책은 별 효과를 못 봤다. 우리나라는 국민건강증진기금사업으로 2005년부터 전국 보건소에서 금연클리닉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홍보와 접근성 부족으로 이용률이 매우 낮다. 즉, 지난 8년간 담뱃세 인상 이후 제대로 된 효과적인 금연 정책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의 2020년 남자 흡연율 목표인 20%대의 흡연율 달성을 위해서는 매년 담뱃세를 500원씩 인상해 최대 7500원까지 올려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따라서 우선은 상대적으로 너무 낮은 담배 가격을 적정 수준으로 올릴 필요가 있고, 그 이후 물가와 연동하여 매년 올릴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흡연자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주장도 나올 수 있다. 담배는 기호품이지만 중독성 약물이며 생활필수품은 아니다. 담배 제품을 사용함으로써 개인과 가족, 직장, 사회의 질병 부담이 커지는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담뱃세 인상을 통해 담배 제품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합리적인 정책이다.

국민 건강을 위해서는 단순히 담뱃값을 올리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금연구역을 확대하는 것과는 별도로 담배를 끊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다양한 금연 지원 서비스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담뱃값 인상의 기본 목적은 흡연자와 비흡연자 모두의 건강한 삶이기 때문이다.

담뱃세로 거두어진 세수는 다양한 형태로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WHO) 권고에 기초해 국민 건강 증진과 금연 지원 사업, 공중보건 사업에 우선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지난해 11월 서울에서는 제5차 WHO 담배규제기본협약의 당사국총회가 열렸다. 흡연자를 비난하거나 부담을 주려는 목적이 아니다. 담배라는 위해 물질의 위험성, 그로 인한 건강 악화에 전 세계가 공감했기 때문이다. 또 흡연에 따른 질병과 사망 원인의 상당 부분이 담배산업의 마케팅에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우리나라 역시 2005년 WHO 담배규제기본협약의 비준국이 되었고, 금연 정책을 지속적으로 강화할 의무가 있다.

담뱃세를 인상하면 밀수, 위조 담배 유통 등의 우려가 있긴 하지만 지난해 11월 당사국총회에서 ‘담배 불법거래 근절에 관한 의정서’가 승인됨에 따라 담배 제품의 불법거래 시도를 막을 수 있는 국제적 기반은 마련되었다. 흡연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5조4000억 원으로 추산된 바 있다. 100세 시대를 맞아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흡연율을 줄이는 것이 사회의 필수 과제다.

최은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 필자 소개 ::

1993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보건교육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민고혈압사업단 전문위원을 지냈다.
▼ 흡연자가 봉인가 ▼

정경수 한국담배소비자협회 회장
정경수 한국담배소비자협회 회장
언제나 연초만 되면 담배 가격 인상문제가 불거진다. 정부나 금연단체들은 ‘국민건강 증진’이라는 명분으로 각종 규제정책을 쏟아내곤 한다.

이런 가운데 이번에는 갑자기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이 담뱃값을 4500원으로 2000원 더 올려야 흡연율도 낮출 수 있고, 세원 확보도 가능하다며 입법 발의했다. 담뱃값을 인상해서 전 국민의 건강 증진에 이바지하겠다는 논리다.

이런저런 이유를 댄다고 해도, 결국은 흡연자들의 주머니를 털어서 세원을 확보하겠다는 뜻이 엿보인다. 담뱃값은 2004년 12월 김대중 정권에서 500원이 오른 뒤 8년 동안 인상되지 않았다. 흡연자로부터 세수를 걷어 국민건강증진기금을 마련하겠다는 생각에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 김덕룡 원내대표는 ‘담뱃값 인상은 반서민적 발상’이라고 인상 반대안까지 내놓은 바 있다.

담뱃값 인상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물가만 올릴 가능성이 크다. 담배의 주 소비계층은 서민들이다. 특정 계층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전체 물가지수에 끼치는 영향도 크다. 2011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담배가 물가에 미치는 가중치가 481개 소비자물가 조사품목 가운데 20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상대적으로 소득수준이 낮은 서민계층이 많이 이용하는 담배의 가격이 만일 대폭 인상된다면 소득계층 간의 위화감, 세대 간의 대립, 나아가 사회적 갈등은 더 커질 것이다.

보건당국의 담뱃값 인상 근거도 미약하다. ‘담뱃값이 싼 나라 국민들은 흡연율이 높다’며 우리나라 남성 흡연율이 세계 최고인 원인이 저렴한 담뱃값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그 주장에 부합하는 국가들만 강조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계보건기구(WHO) 2009년도 세계담배보고서에 따르면 유럽 국가들의 남성 흡연율은 35.3%에 이른 반면 아프리카 국가들, 소위 후진국으로 분류되는 나라들의 남성 흡연율은 13.1%였다. 반면 우리나라 흡연율은 39.4%로 조사됐다. 담뱃값만 본다면, 아프리카는 개비당 가격이 제일 낮고 흡연율도 가장 낮은 셈이다. 반면 담뱃값이 우리보다 높은 유럽 국가들의 흡연율은 한국과 큰 차이가 없었다.

가격을 올리면 피우던 사람이 담배를 끊을까. 그렇지 않다.

아일랜드의 경우 우리나라보다 담배 가격이 6배나 비싼데 흡연율은 우리나라보다 3.4%포인트 높다. 이것은 담배가격이 비싸야만 흡연율이 낮아진다는 정책이 틀렸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게다가 우리나라보다 소득수준이 3배 이상 높은 나라들과 담배 가격을 단순 비교하는 것에도 오류가 있다. 현재 나온 안 중 가장 대폭적인 2000원 인상론에는 국민 건강이라는 명분 뒤에 다른 의도가 숨어있다. 현재 가장 많이 팔리는 담배 가격 2500원을 기준으로 2000원 인상할 때 소비가 10% 줄더라도 6조5000억 원가량의 추가적 세수확보가 가능한 것이다.

담배가 아무리 유해한 상품이라 해도 흡연권과 담배 소비권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자유에 해당한다. 담배가 쉽게 끊을 수 없는 비탄력적인 상품이라는 특성을 이용해, 또 흡연자들의 조세저항이 적을 것이라는 판단 아래 대폭적인 인상을 정부가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담뱃값 인상을 통한 세수확보 전에 국민건강증진기금의 운용 방식과 집행에 불합리한 점이 없는지부터 정부와 국회는 살펴보아야 한다.

세수확보를 위한 불합리한 담뱃값 인상은 ‘더이상 국민들에게 증세 없다’는 박근혜 대통령이 한 국민과의 약속, 그리고 19대 국회가 민생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대통합 정치에 대한 국민의 기대를 완전히 저버리는 것이다.

담배 소비자들이 국민건강 증진과 건강한 사회 조성을 반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비흡연자들의 건강과 특히 청소년들의 흡연율 증가에 대해서도 누구보다도 우려하고 있다. 다만 합법적으로 생산, 판매하는 제품에 대한 소비자로서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따라서 담배 가격을 올릴 때는 시장에 맡겨 물가상승률을 적용하는 물가연동제 같은 인상 방법이 적합할 것이다. 담뱃값 인상으로 거둬들인 세원을 가지고 전 국민의 복지 재원에 쓰겠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복지 정책의 발상은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를 이룰 수 없는 정책이다.

정경수 한국담배소비자협회 회장
:: 필자 소개 ::

30년간 아나운서 생활을 했으며 문화방송 아나운서실장을 지냈다. 한국방송회관 관리이사, 21세기방송포럼 회장을 맡았다.

오피니언팀 report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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