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기현]4월 재·보선의 정치학

  • 동아일보

김기현 채널A 정치부 차장
김기현 채널A 정치부 차장
20년 전 4월이었다. 김영삼(YS) 대통령은 1993년 2월 취임하자마자 고위 공직자 재산공개, 군내(軍內) 핵심 사조직 하나회 숙정, 대대적 사정(司正) 등 고강도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다. 동아일보 등 언론의 검증으로 최형우 민자당 사무총장, 박희태 법무부 장관 등 당정청 고위 인사가 낙마하는 역풍을 맞기도 했지만 초반 출발은 좋았다. 그리고 두 달 만에 첫 시험대인 4·23 재·보궐선거를 맞았다.

어떤 성적표를 받느냐에 따라 정권 초기의 성패가 달렸기 때문에 여권은 사활을 걸었다. 당시 이기택 대표가 이끌던 민주당도 마찬가지였다. 4개월 전 대선에서 패배한 김대중(DJ)이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떠난 뒤 표류하던 민주당으로서는 어떻게든 분위기를 반전시켜야 했다.

3개 선거구 중 YS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 두 곳은 여당의 무난한 승리가 예상됐지만 야세가 강한 경기 광명이 관건이었다. YS는 재야 운동권 출신 손학규라는 혁명적인 카드를 내세워 이곳에서까지 승리하며 첫 재·보선에서 전승을 거뒀다.

반면에 참패한 민주당은 이기택 대표와 DJ 동교동계의 어색한 동거관계에 본격적인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는 2년 뒤 DJ의 정계 복귀를 불러오는 단초가 됐고 돌아온 DJ는 결국 1998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새 정부가 출범한 해의 4월 재·보선은 이처럼 새 대통령에 대한 첫 평가일 뿐 아니라 정권 5년의 향방과 차기 대선 구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도 15년 전 DJ 정부 1년차인 1998년 4·2 재·보선을 통해 정치에 들어왔다. 대구 달성에서 박근혜가 당시 여권의 거물 엄삼탁 전 안기부 기조실장을 꺾은 데 힘입어 야당이던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은 대선 패배 뒤 첫 재·보선의 4곳 모두에서 이겼다.

박 당선인으로선 20년 전 YS나 15년 전 자신처럼 올해 4·24 재·보선에서도 성공적인 출발을 바랄 것이다. 그러나 정부 출범 전부터 인선에 대한 실망감이 커지는 상황에서 선거구로 이미 확정된 서울 노원병과 부산 영도는 새누리당에 쉬운 곳이 아니다.

여권에서 새누리당 중진 김무성 전 의원이 전격적으로 영도 출마를 선언한 것을 신호탄으로 4월 재·보선을 향한 ‘게임’이 벌써 시작됐다. 원내 진입으로 정치 복귀를 노리는 김무성은 당권까지 염두에 둔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다음 10월 재·보선 때는 여권 내의 정치지형과 민심의 흐름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른다. 그때는 공천도, 당선도 보장받기 힘들다는 판단이 그의 결정을 재촉했을 것이다.

반대편에는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후보가 있다. 20년 전 4월 민주당은 정계를 은퇴하고 영국에 가 있던 DJ만 쳐다봤다. 이번에도 민주당 대신 미국에 있는 안철수가 야권의 ‘메인 플레이어’다. 다음 달 귀국할 것으로 보이는 안철수가 직접 선거에 나서지 않더라도 측근 인사를 출마시키고 지원에 나서면 재·보선은 순식간에 차기 대선 레이스의 전초전이 돼 버린다.

벌써부터 안철수 진영 주변에선 김성식 전 의원, 금태섭 정연순 변호사 등 출마 가능성이 있는 인사들의 이름까지 나온다. 안철수의 고향인 부산에서도 야권 표가 많은 영도와 진보진영 노회찬 전 의원의 지역구였던 노원병 모두 ‘해볼 만한 곳’으로 기대하는 듯하다. 반면에 박근혜가 미국 벤처업계의 영웅 김종훈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으로 지명한 것을 ‘안철수 견제 포석’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안철수 ‘백신 신화’를 한순간에 덮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선이 끝나자마자 다시 정치게임이 시작되는 상황이 올 경우 국민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민심은 한순간의 자만도 허용하지 않는다. 1993년과 1998년 4월 재·보선에서 각각 전승을 거두며 기분 좋게 출발했던 민자당과 한나라당은 5년 뒤 대선에서 모두 졌다.

김기현 채널A 정치부 차장 kimkihy@donga.com
#대선#재선#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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