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병종]5060이 2030을 눌러? 세대는 이기고 지는 게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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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종 서울대 교수·화가
김병종 서울대 교수·화가
올해는 뱀띠 해, 계사년이다. 올해 만 60세도 계사생인데 옛날 같으면 갑년을 맞는 60세 계사생도 슬슬 원로 그룹으로 들어올 만한 나이에 든다. 그러나 이제는 어림없다. 원로에 편입되기에는 구상유취(口尙乳臭)인 것이다.

언젠가 현재 나이에서 24년을 뺀 것이 실제 나이라고 다소 익살스럽게 쓴 글을 본 적이 있는데 함께 제시한 시끌벅적한 의학적 자료며 산출근거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수긍이 갈 만했다. 옛날 같으면 슬슬 뒷방으로 물러나 있을 나이에 쌩쌩한 현역으로 뛰고 있는 이들의 면면을 떠올리다 보면 이 같은 글은 결코 과장이 아닌 것이다. 이 사실을 실감한 것이 지난해 말에 열린 한 출판인의 출간기념회였다.

민음사 그룹 박맹호 회장의 팔순 기념 자서전 ‘책’ 출간을 기념하는 자리였는데 가보니 쟁쟁한 70, 80대 현역들이 줄을 이어 참석하고 있었다. 축사와 건배사를 한 이들 중에도 그날의 주인공 박 회장과 동갑인 닭띠가 세 사람이나 되었다. 닭띠면 올해 우리 나이로 81세인데 한결같이 놀랍도록 정정했다. 나는 부지런히 머릿속으로 그들 나이에서 24를 빼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은 첫 번째 축사를 하기 위해 등단한 전 문화부 장관 이어령이 닭띠 예찬을 하는 바람에 나는 그이들이 모두 닭띠 동갑인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이어령은 한 출판인의 생애를 통해 닭띠 인생의 필모그래피를 순발력 있게 엮어내었다.

예컨대 닭띠 출판인 박맹호의 사적 버전을 그들 세대의 공적 논리로 풀어가는 바람에 나 같은 사람까지도 닭띠들의 생애를 역산하면서 그 의미를 되새김질해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바람에 덕담이나 몇 마디 오간 뒤 펑펑 사진이나 찍고 흩어질 수 있었던 행사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반추하는, 그리고 그 격변의 역사 속을 오롯이 걸어온 닭띠 세대에 대한 공감으로 확산되었다.

“우리 닭띠들은 태어나자마자 우리말 아닌 일본말을 익혀야 했고 우리글 아닌 일본글을 배워야 했다”로 시작된 이어령의 축사는 떠들썩한 장내를 아연 숙연하게 몰고 갔던 것이다. 이후 꿈 많은 소년 시절에 겪어야 했던 동족 전쟁과 4·19 등 시대의 격랑 속을 헤쳐 온 닭띠들의 애환과 모진 문명에 대해 숨 가쁘게 토해내는 것이었다.

물론 그 격랑 속에서도 오롯이 출판 한길을 달려온 그의 벗에 대한 덕담으로 맺음말을 삼기는 했지만 어쨌든 순식간에 한 객인의 행사를 세대의 논리로 갈음했다는 점에서 “역시 이어령”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두 번째 닭띠는 전 노동부 장관 남재희였는데 박 회장과 동향인 그이는 숫제 소년 같은 어투로 그들의 옛날을 회상하고 있었다. “길을 가다 맹호 아버지를 만나 인사를 드렸더니…” 식으로 어제인 듯 그 옛날을 술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이 대목에서만 보자면 마치 이들은 집 나온 철부지 청년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시인 고은의 웅변조 건배사는 새삼 닭띠 나이에서 24년 아닌 40여 년을 빼야 될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내 생전 그토록 꽝꽝 울리는 건배사는 처음이었다. 마치 무슨 선언문을 낭독하는 것처럼 힘이 넘쳤던 것이다. 나중에 행사장 뒤풀이 자리에서 시인은 먼발치에서 “어, 화가 선생!” 하면서 손을 들었다.

나중에 시인은 멀찍이서 몇몇 여류작가며 문인들과 함께 왁자지껄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시종 와르르 와르르 웃음보가 터지는 모습이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때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아내에게 왜들 그렇게 웃었냐고 했더니 고은 시인의 재담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이는 나와 인사를 나눈 후 “저 화가 양반 글은 허리에 낭창낭창 감겨, 이렇게”라며 당신의 허리를 어린아이들의 놀이기구인 훌라후프 감고 돌리듯 했다는 것인데 아닌 게 아니라 멀리서 보기에도 무용수 뺨치는 유연성이었던 것이다.

산수화에 천강산수(淺絳山水)라는 것이 있다. 먹을 주조로 하되 엷은 청색과 붉은색 계열을 섞어 그리는 그림이다. 대체로 땅과 하늘 쪽으로 나누며 그 색을 적절히 쓴다. 이 두 가지 담채를 얼마나 잘 조화시켜 그리느냐가 천강산수의 관건이다. 비단 그림에서뿐만 아니라 사람 사는 세상에서도 노·청의 조화는 아름답다.

이번 대선이 50, 60세대의 가공할 투표율을 두고 5060이 2030을 눌렀다라고 쓴 글을 본적이 있는데 세대는 무슨 누르고 눌리거나 이기고 지는 것일 수 없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불행한 일이다. 각 세대가 지닌 역량이 다른 것이고 그 세대들의 각각 다른 빛과 색의 역량이 잘 조화될 때 결집된 에너지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심신의 건강상태나 사회적 활동 같은 것을 도외시하고 무조건 연령별로 세대 구분을 하는 것 또한 무의미한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 때면 세대 간 갈등은 지역 간 갈등 못지않게 새로운 갈등 요인으로 두드러지고 있다.

앞으로 또 어떤 미래의 어떤 문화가 밀려와 세대 간 골을 만들지 모른다. 그러나 세상이 어떻게 바뀐다 해도 세대 간 조화와 균형추는 필요하다. 마치 아름다운 옛 천강산수 한 폭과 같은.

김병종 서울대 교수·화가
#계사년#세대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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