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상복의 남자이야기]<47>‘아픈 청춘’과 ‘기대 고문’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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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이후 아슬아슬 이어졌던 평화가 깨지고 말았다. 거의 매일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 슬그머니 들어와 자기 방에 틀어박히던 아들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로 심사가 뒤틀렸는지 “허송세월을 계속할거냐”는 아버지의 추궁에 눈을 치켜뜨고 반항하는 것이었다. “아빠는 뭘 잘했다고 그래요?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표를 찍어놓고는….”

남자는 화를 눌러 참았다. 술 취한 아들놈을 붙들고 시비를 가려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평생을 다퉈도 결론이 나지 않는다는 정치 성향을 물고 늘어지는데.

예전부터 아들의 어리광을 웬만하면 받아주려고 했다. 스펙을 만든답시고 휴학을 해도, 뭐 하나 진득하게 하지 못하고 맛보기로 끝내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인터넷 검색해 보고는 얕잡아 보아도.

‘아픈 청춘’이라니까.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다음 세대를 위한 길을 터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기성세대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아들의 마음속 깊은 곳의 묵은 분노, 그것은 분명 기성세대에 대한 원망일 터였다. 그런데 남자는 아들의 분노가 겨누는 대상에 자신 역시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야 깨달았다.

“아무 생각 말고 공부만 하라면서요? 그래봐야 무슨 소용 있어요?”

아내가 푸념하는 아들의 등을 떠미는 사이에 남자는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각성에 이르렀다.

아들은 다른 시대를 살아온 것이다. 높은 점수를 얻어야만 조건부로 사랑을 받을 수 있었고 경쟁에서 이겨낼 때에만 ‘내 자식’일 수 있었다. 그렇게 20년이 넘게 부모의 기대에 맞춰 달려왔는데, 정작 목표지점에 도달하자 황량하게 펼쳐진 벌판.

그런데도 부모는 여전히 기대의 끈을 굳게 쥔 채 놓지 않는다. 부모에겐 애정이 담긴 기대일 테지만, 아들 세대엔 무자비한 고문인 것이다. ‘기대 고문.’

남자 역시 부모의 기대를 받으며 자라왔지만 아들 세대만큼 집요한 기대는 아니었다. 너무 집요한 나머지 아이들의 일부가 되어버린 기대.

그런 기대가 내면화되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내지 못하고 불만의 악순환에서 허우적대는 것이다. 스스로를 기대 고문의 형틀 위에 올려놓고 있으니 무엇을 한들 마음에 들 리가 있을까.

아들의 분노는 치기 어린 반항만은 아니었다. 남자는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아들에 대한 기대와 간섭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냉정하게 따져보았다.

남자는 현관 밖에 신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결심했다. 아침에는 해장국을 앞에 놓고 아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기로. 무슨 얘기든 끝까지 들어보겠다고 마음먹었다.

한상복 작가
#청춘#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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