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세계적 격랑 헤치고 기적의 역사 다시 쓰자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1일 03시 00분


가장 한국적인 외모의 가수 싸이(본명 박재상)는 노래했다. ‘아름다워 사랑스러워/그래 너 헤이 그래 바로 너 헤이/지금부터 갈 데까지 가볼까.’ 싸이는 말춤 하나로 아시아를 넘어 미국 유럽 남미 호주로 갈 데까지 가봤다. 2013년 계사년(癸巳年)은 뱀띠 해다. 1977년생인 싸이도 뱀띠다. 그는 ‘강남 스타일’로 지난해 세계 최초 유튜브 조회수 10억 건을 돌파해 역사를 새로 썼다. 시인 김지하는 “한(恨)이 많은 우리 민족이 흥을 발휘할 때 한류를 일으킨다”고 했다. 춤추고 노래하기 좋아하는 우리 민족성에 신명나고 화끈한 고유의 콘텐츠를 담고, 첨단 테크놀로지의 유튜브와 융합시켜 글로벌 무대로 날아오른 싸이는 세계화시대 한국 경쟁력의 상징이다.

대한민국 역사의 주요 고비에서 우리 국민의 선택은 현명했다. 공산화를 막아내고 자유민주주의의 기틀을 다진 이승만 대통령부터 균형발전의 시대정신을 각인시킨 노무현 대통령까지, 국민이 뽑은 역대 대통령들은 과오도 있었으나 시대가 요구하는 역할을 다하기 위해 힘썼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글로벌 금융위기에 성공적으로 대응했다는 업적이 남을 것이다. 2월 25일 취임할 박근혜 제18대 대통령 당선인에게는 국민통합이라는 시대적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보수 후보와 진보 후보를 지지하는 표는 52 대 48로 양분됐다. 보수는 지지 후보가 당선됐다고 해서 자만할 때가 아니다. 진보 후보는 비록 낙선했지만 과거 어느 대통령 당선인보다 많은 표를 얻었다. 보수는 개혁과 변화를 갈망하는 국민이 그만큼 많다는 사실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기득권에 안주하고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무관심하지 않았는지, 권위와 관행을 앞세워 자기혁신에 소홀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속설이 무색할 정도의 대결집을 이뤄냈다. 그러나 나만이 옳다는 독선, 우리 편이 아니면 모두 적(敵)이라는 식의 이분법적 편 가르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국가 발전 패러다임을 축조(築造)할 수 있는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견제와 균형 속에 함께 노를 저어간다면 세계사적인 격랑을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첫 여성 대통령, 첫 과반 득표 대통령인 박근혜 당선인의 임기 1년 차는 향후 5년 임기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시기다. 온 국민의 정신과 기개를 모으면 또 한번 기적의 역사를 만들어 갈 수 있다. 박 당선인은 앞만 내다보고 뜀박질하느라 소홀히 한 것, 놓쳐버린 것을 챙기면서 구태정치의 모습을 바꿔놔야 ‘새 정치’를 바라는 국민의 마음에 다가설 수 있다.

朴 당선인, 분열과 부패 끊어내야 대통합 이룬다

그 첫 시험대는 인사(人事)가 될 것이다. 대통합을 이루려면 고질적인 지역주의 연고주의의 뿌리를 뽑아내고, 부패를 키우는 정실(情實)자본주의의 싹을 끊어내야 한다. 어떤 대통령도 임기 안에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 훗날 역사가들이 박근혜 정부에 대해 ‘민생의 정부’ ‘통일의 정부’ 등으로 평가할 정도의 큰 그림을 그리고 집중해야 한다. 지역과 이념, 세대의 씨줄 날줄 위에 군데군데 구멍 나고 어긋나고 상처 난 곳을 메우고 바로잡고 보듬는 정치라야만 사회통합이 이루어질 수 있다.

경제에서도 2013년은 사회적 약자를 일으키고 저(低)성장의 질곡을 깨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 지금 글로벌 경제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겪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선진국들부터 보호주의로 돌아섬에 따라 저성장 기조로 접어들었다. 유로권의 채무위기도, 글로벌 경기침체도 언제 끝날지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중요한 건 어떤 경제시스템이냐가 아니라 성장에 필요한 개혁을 해내는 리더의 존재라고 모건스탠리의 신흥시장 책임자 루치르 샤르마는 갈파했다. 그가 국민소득 2만 달러대의 나라 가운데 연 3% 이상 성장세를 올릴 수 있는 국가라며 지목한 2개국이 바로 체코와 한국이다.

우리 경제는 2007년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이룬 후 5년간 정체돼 있다. 올해 성장률도 3% 수준에 머물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온다. 한국경제는 도약이냐 침체냐의 기로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로벌 무대로 솟구칠 수 있는 구조개혁이 필요하다. 한국인 특유의 스피드 경영과 창조적 글로벌화로 대응하면 세계의 중심에 선 우리 제조업은 또 한번 ‘르네상스’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미국 등 선진국은 최근 산업의 하드웨어에 소프트웨어와 인터넷을 융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산업 인터넷’으로 제3의 산업혁명을 추구하고 있다. 세계를 또 한번 깜짝 놀라게 할 코리아 모델은 바로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을 비빔밥처럼 산업에 융합한 ‘산업의 강남스타일’이 될 수 있다. 유튜브에 올라탄 ‘강남 스타일’은 엔터테인먼트의 인터넷화였다. 농업부터 제조업 서비스업까지 전 산업의 인터넷화를 통해 생산과 가치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것이 박 당선인이 제시한 대한민국 로드맵 ‘창조경제론’이다. 글로벌 인력을 길러내고, 이들 창의적 융합인재가 유연한 노동환경에서 신나게 일하도록 만들어 준다면 일자리 창출은 물론이고 저성장 저출산 고령화의 3중 굴레를 넘어서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자면 기업과 노동계, 교육계, 정부와 시민사회까지 고통과 열매를 함께 나누는 사회적 합의가 필수다. 한국은 작년에 인구 5000만 명에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넘는 ‘20-50 클럽’에 세계 7번째로 가입했다. 대기업 때리기의 경제민주화로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같이 글로벌 시장에서 잘나가는 몇몇 대기업의 힘을 꺾어 놓는 데 열중하다가는 30-50 클럽(국민소득 3만 달러에 인구 5000만 명)으로 가기는커녕 20-50 클럽도 지키기 어려울지 모른다.

‘산업 인터넷’ 혁명 통해 ‘30-50 클럽’으로

우리처럼 한 많은 민족성과 열렬한 교육열, 파편화된 노동운동 역사가 있는 아일랜드가 사회협약의 모델이 될 수 있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1987년 첫 노사정(勞使政) 국가재건협약을 이뤘고, 마침내 식민지 종주국 영국을 능가하는 ‘켈틱 타이거’의 경제 기적까지 이뤘다. 글로벌 위기 여파로 2010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으나 2015년까지 지속될 ‘사회 파트너십 합의’를 통해 가장 모범적으로 위기를 극복한 나라로 꼽힌다. 아일랜드가 해낸 노사정 합의를 한국이 못 해낼 리 없다.

잠재성장률을 4%대 이상으로 끌어올리려면 규제를 풀어 기업 투자를 활성화하고,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시장의 승자들이 성과를 독식(獨食)하려 들지 말고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책무)의 실천에 앞장서야 한다. 뒤처지는 사람들이 다시 땀 흘려 일할 수 있도록 교육 훈련과 직업 알선, 소득 지원 등의 사회적 안전망을 정교하게 마련해야 한다. “열 자식 안 굶기겠다”는 여성 대통령이 진심을 다하면 국민의 마음도 따라갈 것이다. 한강의 기적도 이렇게 일어났다.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 중국 일본의 3강에서 새로운 리더십이 본격 등장하면서 국제정세 역시 상대적인 미국의 쇠퇴 속에 거침없는 중국의 굴기(굴起)로 새판 짜기가 진행 중이다. 휴전선의 북쪽에는 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한 뒤 농축 우라늄탄을 이용한 3차 핵실험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30세의 ‘햇내기’(신출내기의 북한말) 지도자가 좌충우돌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우리의 모델이었던 일본이 현재는 ‘세계 넘버원’과 거리가 멀어지는 모습이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최근 “거품경제와 재정적자 우려 없이 선진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 교역”이라고 강조하면서 “일본도 자국 문제의 심각성을 고민한다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들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자유무역의 확대는 개별 국가가 경제성장과 외교안보 관계를 함께 다지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주변국 새 지도자들이 내치(內治)에 몰두하는 지금이 우리에게는 한반도 문제 해결에 주도권을 잡고 핵심 역할을 할 기회다. 박 당선인은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의 새 지도자들을 상대로 동북아 평화와 한반도 통일을 위한 협력을 이끌어낼 소명을 감당해야 한다.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끌고, 북한 핵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격변기에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야 북한 급변사태를 포함한 위기가 닥칠 때 한국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

시인 문정희는 ‘누군가는 세상은 추운 곳이라고 말하지만/또 누군가는/세상은 전쟁터요, 사막이라고 말하지만/산등성이를 어루만지는 봄 햇살 같은/따스한 이 손길을/나는 그것을 평화라고 부르기로 했다’고 썼다. 우리는 그것을 2013년의 대한민국이라고 부르고 싶다.
#대선#경제#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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