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성건용]핏방울로 암 진단하는 ‘반도체 칩’의 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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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건용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바이오센서연구팀장
성건용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바이오센서연구팀장
지난해 암 발생 환자는 25만여 명이나 되며 사망자는 7만1000여 명에 이른다. 성인 4명 중 1명이 암에 걸릴 수 있다는 무서운 통계까지 나오는 형편이다.

모든 질병이 그렇지만 암도 조기에 발견하는 게 완치를 위한 지름길이다. 이에 따라 정기적인 건강검진의 중요성이 부각됐으며 암 검진을 위한 혈액검사, 내시경검사 및 컴퓨터단층촬영(CT)검사는 필수가 됐다. 하지만 1년에 한 번 정도인 건강검진을 하기 전에 암을 미리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암이 발병할 때 암세포가 만드는 물질 또는 체내의 정상세포가 암세포와 반응해 만들어내는 단백질을 ‘종양표지자(Cancer marker)’라고 한다. 특정 암에 대해 정확도가 매우 높은 몇몇 표지자의 경우 검사 수치가 일정 수준 이상일 때는 정밀검사를 받아야 한다. 일반인이 휴대용 혈당 체크기를 사용하듯 쉽게 채혈해 분석할 수 있다면 암 발병의 가능성 정도를 미리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착안해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7년 전부터 암 진단을 위한 반도체 센서 칩 및 분석 시스템 연구에 들어갔다. 생명 연장의 꿈에 생명공학자가 아닌 반도체공학자가 도전하는, 다소 무모한 도전이었다. 반도체에는 정통하지만 암이나 혈액 관련 전문 의료지식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만큼 진단검사의학과 의료진 및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전문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지식을 쌓아갔다.

드디어 2010년 초 가시적인 연구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혈액을 희석하지 않고 측정하는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올해는 혈액 한두 방울로 암 등의 질병을 조기 진단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식품 독소 같은 바이오 유해물질도 감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기술은 특정 암에 반응하는 항체를 반도체 나노센서(나노센서 100개를 손톱 크기만 한 반도체에 집적한 것)에 부착한 뒤 측정하고자 하는 혈액을 투과시켜 항원·항체 반응을 보고 암 표지자인 항원의 전하량에 의해 나노센서에 흐르는 전류량의 변화를 측정해 항원의 농도까지 알 수 있는 기술이다. 찰스 리버 하버드대 교수가 아이디어를 제안한 바 있으나 실용화에 여러 걸림돌이 있어 아직 상용화되지 못하고 있었다.

연구진은 반도체 칩의 생산 수율과 재현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존의 반도체 공정을 그대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칩을 제작했다. 나노 입자를 활용해 항원·항체 반응 후의 전기신호를 증폭하는 등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걸림돌을 하나씩 풀어나갔다.

그동안 혈액검사로 암을 조기에 진단하기 위해선 종합병원 등 큰 병원에서 피를 뽑아야 했다. 검사 결과를 받아보기까지 수일에서 일주일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검진비용도 비싸 시간적 경제적 손실이 이만저만 아니다.

하지만 이런 불편과 고통이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ETRI가 개발한 반도체 칩 하나면 누구나 손쉽게 혈액 한두 방울로 혈액검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인도 휴대용 바이오칩으로 쉽게 식품 독소를 감지할 수 있어 검역소뿐 아니라 요식업소, 급식소 및 일반 가정에서도 식품 안전성의 현장 검사기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연구 성과가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기까지는 연구진의 추가적인 노력과 국민적 관심이 절실하다. 연구진의 꿈은 국민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쉽게 질병을 조기 진단할 수 있는 스마트폰 내장형 진단키트를 개발하는 것이다. 이와는 별도로 개발된 기술을 국내 산업체에 이전하는 작업도 추진하고 있다. 산업체를 통해 국민들이 직접 쓸 수 있는 제품 또는 서비스로 선보이기 위한 조치다. 반도체 칩 하나로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생명 연장을 실현시킬 날이 머지않았다.

성건용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바이오센서연구팀장
#암 진단#반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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