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듯했던 북한발(發) 시한폭탄 초침이 다시 째깍거리기 시작했다. 북한은 어제 이른바 ‘광명성 3호’의 발사 예정일(10∼22일)을 29일까지로 연장한다고 밝혔다. 지난 주말 심야에 나온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시기 조절 발표를 사실상 연기선언으로 판단했던 우리 외교안보 부처는 또다시 초조하게 카운트다운을 기다려야 할 판이다. 정부 내부에서도 미사일 발사계획 철회요구가 먹힐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노무현 정부 때는 미사일 발사 저지가 가능하다는 희망적 기대(wishful thinking)가 지배했다. 2006년 6월 북한의 대포동 2호 발사 움직임을 포착한 즉시 “개성공단, 금강산, 남북철도·도로 연결 등 3대 경협 중단을 검토하겠다”고 한 엄포가 대표적이다. 이종석 당시 통일부 장관은 “일본이 내놓은 10개의 제재보다 한국이 쌀 지원을 끊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했다. 미사일 카드를 대외 협상용으로 잘못 판단해 북한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는 기대를 한 것이다. 매년 쌀 40만∼50만 t, 비료 30만 t 지원이 북한의 행동을 제어할 수 있는 결정적 레버리지(지렛대)가 될 수 있다는 맹신에서 나온 착각이기도 했다.
그해 7월 5일 북한은 보란 듯 대포동 2호를 포함해 모두 7발의 미사일을 쏘아 올렸다. 6일 뒤 이 장관의 고집으로 열린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북한은 “선군(先軍) 정치가 남측의 안전을 지켜준다”며 “100여 년 전 조상들은 화승총이 없어 망국 조약을 강요당했다”는 해괴한 논리를 폈다. 직접 말은 안 했지만 매년 챙기는 쌀을 외세로부터 남측을 지켜준 대가로 받는 일종의 조공미(朝貢米)로 본 것이다.
이때의 트라우마 탓인지 이명박 정부 들어 우리의 정책수단으로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막을 수 있다고 말하는 당국자는 만나기 어렵다. 그 대신 핵 개발과 미사일 발사는 국제정세 및 남북관계와 상관없는 북한의 체제 목표란 설명이 대세가 됐다. 정부로서는 어차피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을 중단시킬 수 없으니 정책 실패로 돌려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을 것이다. 북한은 지난해 12월 김정일 사망 후에는 미사일 발사는 강성대국 건설이라는 김정일 유훈(遺訓)의 실천이라며 더욱 뻔뻔해졌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예고한 뒤 미국 일본과의 협조를 포함한 국제 공조가 눈에 띄게 활발해지기는 했다. 국제사회의 일치된 반대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발사를 강행할 경우 초강력 제재가 불가피하다는 외교적 압력이 가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외교당국은 새 지도자 시진핑을 맞은 중국이 북한의 악행(惡行)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견제구를 날리고 있다는 사실도 강조한다.
하지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1998년 8월 대포동 1호 발사 후 14년의 세월이 흐르며 북한 미사일 게임의 법칙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한은 2차례 핵실험에 이어 농축우라늄 핵 보유까지 노리고 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 습득도 북한의 국가적 전략 목표다. 핵탄두의 경량화에 성공하고 대기권 재진입 기술까지 숙달한다면 북한의 핵 폐기를 의제로 하는 6자회담은 계속할 의미를 잃는다. 미국과 일대일 핵군축 회담을 하겠다는 북한의 주장이 허무맹랑한 소리가 아닌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느새 우리 내부에 북한 미사일 발사를 잊을 만하면 되풀이되는 주기적 행사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안보불감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두 유력 대선후보는 상황의 심각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용납하지 않겠다고만 말할 뿐 구체적 해법을 내놓지 않고 있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가 한반도 안보지형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을 심각한 안보위협인데도 말이다. 북한이 대놓고 핵과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나서는 불행한 사태를 누가 막을 것인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