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기홍]성추문 검사 한 명만의 문제일까?

  • Array
  • 입력 2012년 11월 30일 03시 00분


코멘트
이기홍 사회부장
이기홍 사회부장
엽기적 사건이 꼬리를 문다. 여아를 이불째 납치해 성폭행하는 것 같은 강력범죄만 그런 게 아니다. 검사가 여성 피의자와 검사실에서 성관계를 갖는다는 게 상상이나 가능한 일일까.

엽기는 검사의 행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엽기 2탄은 피해여성의 사진이라며 인터넷과 SNS에 정체불명의 사진들이 유포되는 세태다. 사건과 무관한 사진 속 여성은 어떤 심정일까. 만약 떠도는 사진들 중에 실제 피해여성이 있다면 그 여성과 가족의 고통은 어느 정도일까. 반드시 유출자를 찾아내 엄벌해야 할 중대 범죄다.

사진 유출은 엄벌해야할 중대범죄

엽기 3탄은 인터넷 등 일각에 떠도는 ‘검사 동정론’이다. 43세라고 보기 힘든 늘씬한 젊은 여성의 사진을 본 일부 남성들은 “검사가 꽃뱀의 미모에 넘어갔을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사진 속 여성은 사건과 무관한 엉뚱한 사람이다. 또다른 검증되지 않은 사진에는 중년 여성이 등장하는데 이를 본 남자들은 “여자가 작정하고 유혹했을 것”이라며 역시 여자 탓을 한다.

성범죄의 원인과 책임의 일단을 피해여성에게 돌리려는 이런 시각의 근저엔 뿌리 깊은 편견이 자리 잡고 있다. 올여름 성폭행 사건이 빈발하자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다니니 그렇지”라는 반응이 나온 것과 같은 맥락이다. 여성의 노출과 성폭행은 직접적 상관관계가 없으며, 대부분의 성범죄자는 야한 차림의 여성을 보고 순간적인 욕정에서 범행하는 게 아니라, 작정하고 계획적으로 대상을 물색한다는 범죄 통계에도 불구하고 이런 편견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어떻게 하든 뇌물 사건으로 몰고 가려는 검찰의 고집도 어이가 없다. 뇌물죄로 검사를 처벌한다는 것은 피해여성이 자신의 성을 뇌물로 바쳤음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문제의 여성은 검찰에 출석할 때 남편과 동행했다. 지척에 남편을 기다리게 해놓고 검사에게 성상납을 한다는 게 가능할까.

설사 자발적 관계라고 볼 소지가 일부 있다 해도 검찰이 강제성이 없다고 단정 짓는 것은 다른 사건 처리와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 성폭력 사건은 피해자의 진술이 우선적 가치를 지니는데 이번 사건 피해여성은 당시 성관계가 강제적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조계에선 검찰이 뇌물죄에 집착하는 것은 부주의한 검사가 ‘꽃뱀 피의자’와 벌인 개인적 일탈행위로 축소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강간치상이나 폭행·가혹행위죄 등을 적용할 경우 개인비리가 아닌 검찰의 인권침해 사건으로 규정돼 조직이 받을 타격이 더 커지므로 이를 차단하려 한다는 분석이다. 검찰이 진상을 파헤쳐 엄벌하겠다고 나섰지만 속내는 조직보호라는 이기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최소한의 인격적 도덕적 자질조차 검증되지 않은 사회초년생들에게 판검사라는 권력을 주는 현행 사법제도의 문제다. 검사가 되려면 최소한 5년 이상 검사를 보좌하게 한 뒤 엄선해야 한다. 로스쿨 출신이든, 사법연수원 출신이든 마찬가지다. 기소권과 수사지휘권을 무려 1878명(11월 기준 검사 수)이 갖고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검찰 특권 이번엔 뿌리 뽑아야

더 근본적으로는 검사가 피의자의 생살여탈권을 쥔 절대 신의 위치에 군림하게 해주는 견제받지 않는 특권에 사건의 뿌리가 닿는다. 문제의 검사실에서 폐쇄회로(CC)TV 없이 피의자를 심문하는 게 가능했다면 이는 시대착오적 인권 사각지대가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올 초 경남 밀양에서 검사의 경찰관 모욕 사건이 터진 뒤 경찰이 CCTV를 보여달라고 요구하자 검찰은 “CCTV가 꺼져 있어서 보여줄 수 없다”고 통보했다. 이는 검사가 임의로 CCTV를 켜고 끌 수 있음을 의미한다. 만약 경찰관이 CCTV 없는 밀실에서 피의자를 조사하거나 CCTV를 마음대로 껐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날 서울동부지검 별관 3층에서 벌어진 일은 우리 사회에 음습하게 온존해 있는 구시대의 잔재들을 총체적으로 드러내줬다.

이기홍 사회부장 sechepa@donga.com
#성추문 검사#범죄#검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