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9억대 뇌물 검사, 경찰만 알고 검찰은 몰랐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17일 03시 00분


검찰이 어제 구속영장을 청구한 김광준 서울고검 검사의 비리 목록을 보면 세상에 이런 검사가 다 있나 싶을 정도다. 김 검사는 유진그룹 측으로부터 5억9000만 원,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의 측근으로부터 2억7000만 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전 국가정보원 직원 부부의 협박 사건에 개입하고 KTF 임원이 제공한 마카오 여행경비를 지원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 계산으로 뇌물 액수만 9억여 원에 알선 수재 액수가 수천만 원이다. 검사가 수사를 미끼로 돈을 받으면서 변호사까지 겸업했느냐는 비아냥거림이 나온다.

그는 남의 이름을 빌린 차명(借名) 통장으로 수억 원대의 돈을 받아 계좌추적을 피했다. 김 검사가 추가로 이용한 것으로 보이는 2, 3개 차명계좌의 입금 명세가 확인될 경우 받은 돈은 더 늘어날 수 있다. 김 검사는 검사실 여직원 명의의 계좌로도 1억 원 안팎의 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수사를 하면서 알게 된 범죄수법을 그대로 써먹은 셈이다.

검찰의 자체 감찰 조직은 그동안 뭘 하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검찰은 2010년 ‘스폰서 검사’ 사건이 터진 이후 대검 감찰부를 감찰본부로 확대 개편하고 ‘사후 조사감찰’에서 ‘평시 동향감찰’로 전환하겠다고 했지만 그 뒤로도 스스로 인지해서 수사한 것이 눈에 띄지 않는다. 이번 사건에서도 경찰이 수사를 시작할 때까지 검찰이 모르고 있었다면 자체 감찰 기능은 먹통이었다고 봐야 한다. 검찰은 시대착오적인 옹졸함마저 보였다. 검사가 경찰에 불려가 수사를 받는 상황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국민 여론을 무시하고 안하무인(眼下無人) 격으로 경찰 수사를 새치기했다. 이런 판이니 검찰이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수사를 벌이고 구속영장을 청구했어도 수사 결과를 국민이 믿어줄지도 의문이다.

검사들이 선망하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장을 지낸 사람이 이 정도라면 검찰 조직에서 썩은 사과는 과연 김 검사 한 명뿐이겠는가. 검찰이 검사를 수사한 적은 많지만 검찰이 먼저 인지한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사건이 터지고 정치적 사회적 압박에 밀려 수사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번 사건은 검찰이 덜렁 수사 결과만 발표하고 끝낼 일이 아니다. 검찰총장이 사과하고 마무리할 일만도 아니다. 국민은 비대한 검찰 권력을 누가 감시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뇌물#검찰#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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