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현지 시간) 치러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아내 미셸 오바마(48)는 옷 잘 입는 퍼스트레이디로 유명하다. ‘재키룩’이란 말을 하나의 패션 장르로 굳히게 한 스타일아이콘인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에 필적할 만한 유일한 백악관 안방마님으로 꼽힐 정도다.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보다도 미셸 오바마가 한 수 위라는 평가를 받는 부분은 패션으로 정치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가 지난 4년간 펼친 패션 정치, 즉 ‘패션 폴리틱스’는 남편의 백악관 재입성에 무시 못할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7일 남편의 당선 연설 석상에 미국 디자이너 브랜드인 ‘마이클 코어스’의 와인색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그의 모습에 기자는 무릎을 쳤다. 과거 공식 석상에서 몇 차례 입었던 이 드레스를 다시 꺼내든 센스라니…. 고가(高價)의 자국 디자이너 의상이지만 2009년과 2010년 두 차례의 큰 행사에서 입은 ‘재활용’ 드레스였다.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의 경제적 재건을 외치며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고 외친 시점에, 제대로 내조의 핵심을 짚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패션 정치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2008년 치러진 지난 대선을 전후해서다. 취임식 등 공식 행사에서 대만과 쿠바 출신 디자이너 의상을 입으며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미국 내 소수민족의 정서를 자극했다. 오바마의 패션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급격히 침체한 미국의 패션 산업을 부흥시키는 경제적 효과까지 낳았다.
시계를 뒤로 돌려 2002년 12월. 16대 대선이 막바지를 향하던 당시 패션을 담당하고 있던 기자는 노무현 이회창 정몽준 대선 후보의 배우자인 권양숙 한인옥 김영명 여사측에 e메일을 보내 평소 패션 스타일과 좋아하는 브랜드 등을 물었다. 이들은 한결같이 서민적 이미지를 강조하며 단골 옷집에서 저렴하고 편한 옷을 산다고 답했다. “디자인이 아름다운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스카프를 가끔 맨다”는 김영명 여사의 말이 그중 가장 튀는 답변이었다. 하지만 대선을 얼마 남기지 않고 노무현-정몽준 후보가 단일화해 김 여사의 답변은 지면에 실리지도 못했다.
그 후 10년 지났고, 여성 대통령 후보가 나올 정도로 세상이 달라졌다. 하지만 지금 같은 질문지를 대선 후보 또는 퍼스트레이디 후보에게 보낸다 해도 10년 전과 크게 다른 답변이 돌아올 것 같지 않다. ‘옷 로비’ 등 패션을 둘러싼 정치 스캔들이 많았던 탓인지 정치인들은 멋을 내는 데 주저하고, 유권자들은 멋 내는 정치인을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향이 짙은 탓이다.
국내 패션업계는 최근 한류 열풍에 힘입어 해외 진출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다. 과거 구호에만 그쳤던 이른바 ‘K패션’ 바람이 본격적으로 탄력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서맨사 캐머런 영국 총리 부인, 프랑스의 전 퍼스트레이디 카를라 브루니 등은 모두 남다른 패션 감각으로 자국 패션의 외교관 역할을 했다. 패션 감각을 키워 ‘쿨한 미국’의 이미지를 높였으면 좋겠다며 오바마 대통령을 스타일리시한 모습으로 합성한 미국 블로그들도 눈에 띈다. 이미지가 권력인 시대에, 리더들이 패션으로 정치하는 시대가 이미 도래한 것이다.
국내 패션 산업의 발달 정도나 일반인들의 관심도로 봤을 때 우리 민족의 유전자에는 멋을 내고 싶은 본능이 적잖게 자리 잡고 있다. 패션 감각은 이미 현대인의 능력 중 하나로 꼽힌다. 우리의 정치적 리더 가운데서도 이런 ‘능력자’가 나왔으면 하는 것이 기자만의 바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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