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들이 지역의 표심을 잡기 위한 발언이나 맞춤형 공약을 하는 사례가 빈번해졌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야권후보 단일화의 분수령이 될 호남 민심을 잡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두 후보는 모두 부산 출신이지만 문 후보는 ‘정치적 호남의 아들’, 안 후보는 ‘호남의 사위’라고 강조한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주변에서도 문, 안 후보 때문에 흔들리는 부산·경남(PK) 민심을 잡기 위해 동남권 신공항 공약을 만지작거린다는 얘기가 들린다. 대선후보가 없는 충청권을 겨냥해 2002년 노무현 후보의 수도 이전에 버금가는 대형 공약이 등장할 것이라는 소문도 정치권에서 나돌고 있다.
특정 지역을 배척하거나 특별히 배려하는 지역주의는 순수한 애향심(愛鄕心)과는 분명히 다르다. 지역주의 정치는 박정희 정권과 특정 지역을 정치 기반으로 삼은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3김(金) 시대의 부정적 유산이다. 남한 면적만 놓고 보면 미국 캘리포니아 주(州)의 4분의 1 정도인 나라에서 PK 대구·경북(TK) 호남 충청을 따지며 지역정서를 부추기는 것은 우습고 부끄러운 일이다. 아직도 퇴행적 선거문화의 뿌리가 강고하게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모습이 대선후보들이 말하는 새 정치는 아닐 것이다.
‘1노(盧) 3김’이 대결했던 1987년 대선 때 드러난 망국적 지역주의는 요즘 들어 많이 극복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수도권을 중심으로 2030세대와 5060세대가 서로 다른 표심(票心)을 보이는 세대 투표 경향이 새로운 특징으로 떠오르고 있다. 수도권에서는 아버지의 고향으로 자녀의 표심을 추정하는 여론조사의 판별분석법이 더는 쓸모없게 됐다. 그러나 지역주의의 불씨가 완전히 꺼졌다고 볼 수 없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지역주의는 한번 잘못 건드리면 쉽게 폭발할 정도로 인화성(引火性)이 높다.
대선일이 가까워질수록 후보 캠프들은 지역정서를 자극하려는 유혹을 더 받을 것이다. 눈앞에 어른거리는 표를 잡는 데는 지역정서를 부추기는 선거운동만 한 게 없다고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많다. 그러나 한 지역에서 했던 발언이 다른 지역에서는 감표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양날의 칼이다. 박, 문, 안 후보는 망국적 지역주의를 종식시키기 위해 한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지역주의의 부정적 유산을 극복하는 데 큰 걸음을 내딛는 대선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