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억 원의 공금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된 전남 여수시 8급 공무원 김모 씨의 횡령액수가 눈덩이처럼 커져 76억 원으로 늘어났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횡령액수까지 합치면 100억 원대에 이를 수도 있다고 한다. 시의 돈을 관리하는 직원이 10년 가까이 막대한 공금을 빼돌렸는데도 여수시와 전남도는 새까맣게 몰랐다. 감사원의 특별감사에서 적발되지 않았다면 김 씨의 ‘도둑질’은 계속됐을 것이다.
김 씨는 시 공무원들의 근로소득세를 빼돌리는가 하면 시에서 발행한 상품권 소지자에게 지급하는 환급액을 부풀리고, 퇴직 공무원의 명의를 도용해 급여를 가로챘다. ‘횡령 전문가’에게 회계를 맡겼으니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다. 김 씨는 차명계좌를 100개 이상 만들어 빼돌린 돈으로 처가와 친가에 120m² 규모의 고급 아파트 4채를 선물하는 등 선심을 썼고 사채놀이까지 했다. 사무실에 출퇴근할 때는 국산 소형차를 탔지만 평소에는 BMW 벤츠 등 최고급 외제차로 기분을 내고 다녔다.
여수시의 담당 간부들이 김 씨가 허위로 변경해 제출한 직원들의 계좌를 확인만 했어도 횡령을 막을 수 있었다. 공무원 횡령 사건은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단골비리다. 지방자치단체 소속 회계 직원의 부정 역시 빈발하고 있다. 지자체가 ‘곳간 지키기’를 소홀히 한 책임이 가볍지 않다.
역대 정부가 너나없이 깨끗한 공직사회를 만들겠다고 공언해 왔으나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비리사건이 터진 뒤 감찰팀을 꾸려 단속을 벌이지만 그때뿐인 경우가 많았다. 2010년 3월부터 공금을 횡령·유용하거나 금품·향응을 받은 공무원에 대해서는 금액의 5배까지 추징하는 한편 뇌물·횡령죄로 300만 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은 공무원을 퇴출시키는 등 처벌의 강도를 높였으나 별 효과가 없다.
지자체는 국민의 삶과 직결된 행정을 관장하는 최일선의 대민(對民) 창구다. 공무원들이 투철한 공복(公僕)의식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공직자의 부정부패는 전형적인 후진국형 비리다. 한국이 정보기술(IT)산업, 대중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 수준에 올라있지만 막가는 지자체의 부패를 근절하지 못한다면 국격(國格)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이지만 정부와 지자체는 이제부터라도 철저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