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호원]제네바발(發) 지식재산 리포트

  • 동아일보

김호원 특허청장
김호원 특허청장
지난 추석 연휴에 고향 대신 스위스 제네바에 다녀왔다. 세계지식재산기구(WIPO)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185개국 정부의 지식재산 분야 수장들도 자리를 함께하였다. 아름다운 레만 호(湖)가 내려다보이는 WIPO 본부 건물이 순식간에 ‘갈등과 조정’ ‘경쟁과 협력’의 치열한 외교전이 펼쳐지는 각축장으로 변모했다.

이런 외교전 속에서 지식재산 분야의 한류라고 이름 붙일 만한 새로운 흐름을 확인한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로 한류가 글로벌한 문화 트렌드로 각광 받고 있듯, 한국의 지식재산 행정도 새롭게 조망을 받게 된 것이다. 특허제도를 도입해 대한민국 1호 특허가 등록된 지 60여 년이 지난 지금 특허출원 세계 4위, 국제특허출원 세계 5위이자 특허 및 상표분야 선진 5개국의 회원국으로 성장한 한국의 국제적 위상 덕분일 것이다.

“한국은 녹색기술 우선심사제도를 세계 최초로 도입한 가장 혁신적인 나라”라고 평한 싱가포르 청장이나, “유례없이 경제성장과 지식재산분야 성장을 동시에 이룩한 한국을 본받고자 한다”는 브라질 청장의 발언은 어떤 덕담보다 유쾌했다. 또 어린이 지식재산 교육용 애니메이션 ‘발명왕 뽀로로’ 출시 행사에 쏠린 수많은 회원국 대표의 관심은 지식재산 분야의 ‘한국 스타일’도 통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총회 기간 중 많은 나라의 청장들이 회담을 제의해 왔다. 3일간의 현지 활동 기간을 최대한 잘게 쪼개 WIPO 사무총장을 비롯한 10여 개국 청장과 연쇄 회동을 했다.

특히 국제 특허 분쟁의 대안적 해결 방안을 공론화한 건 중요한 성과였다. 삼성과 애플의 분쟁에서 볼 수 있듯 동일한 특허 분쟁에 대해 각국 법원이 서로 다른 판단을 내리는 불합리가 존재한다. 불합리를 제거하면서 경제적이고 신속한 해결 절차를 제공하기 위해 WIPO 분쟁조정센터의 기능을 획기적으로 강화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프랜시스 거리 WIPO 사무총장은 매우 매력적인 제안이라고 답했다. 관련 논의가 조만간 가속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일련의 회담에서 마음 한구석에는 위기감도 자리 잡았다. 지식재산 정책을 국가 정책의 핵심으로 두고, 이를 발판으로 혁신 경제를 이끌겠다는 각국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읽혀졌기 때문이었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전통적 지재권 강국과 더불어 신흥 국가들이 강력한 지식재산 드라이브를 펼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은 새로운 자극이었다.

싱가포르는 지식재산 서비스 허브 국가로의 도약을 꿈꾸면서 해외 특허법인의 자국 내 활동에 관한 규제를 철폐했다. 브라질은 대통령이 직접 나설 정도로 지식재산 정책을 국가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다.

중국의 성장 또한 괄목할 만했다. 특허 출원 건수에 있어 중국은 이미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로 올라섰다. ‘지재권 만리장성’을 쌓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 경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한다면 중국의 지재권 만리장성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각국의 지식재산 정책의 성패가 달렸다고 보는 것도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이렇듯 치열한 경쟁에서 우리가 앞서 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가 자원 배분 순위의 맨 앞줄에 지식재산을 두는 것이 필요하다. 레스터 서로 교수는 ‘부의 지배’라는 저술에서 기업은 물론 국가 운영에도 최고지식책임자(CKO)가 핵심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식재산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산업정책과 경제정책을 운용하는 것이 산업사회에서 지식사회로 패러다임이 바뀐 지금, 국가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길인 것이다.

지식재산을 바탕으로 경제발전의 새로운 ‘한국 스타일’을 창조하는 것, 제네바의 레만 호 위에 뜬 보름달을 바라보며 그려 본 소망이다.

김호원 특허청장
#제네바#지식재산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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