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우종민]도박에 멍드는 청춘들

  • 동아일보

우종민 인제대 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우종민 인제대 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얼마 전 20대 대학생 김모 씨가 찾아왔다. 그는 온라인 불법 도박에 빠져서 수천만 원의 빚을 지고 집안이 풍비박산될 위기라고 했다. 배당률이 높다기에 호기심으로 도박을 시작해 등록금과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모두 날렸다. 손실을 만회하려고 대부업체에서 대출 받아 베팅한 500만 원도 한순간에 날리고 말았다. 김 씨의 부모가 대출을 받아 아들의 빌린 돈을 갚아 주었으나, 이미 도박에 중독된 김 씨는 빚을 갚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PC방에 들러 또 온라인 도박 사이트에 접속했다.

최근 20, 30대 젊은 층에서 도박 중독 환자들이 늘고 있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가 조사한 2008∼2011년 도박 연령대별 현황을 보면 20대의 비율이 2008년 10.5%에서 2011년 19.1%로 4년 사이에 약 9%포인트 증가했고, 30대도 약 5%포인트 늘었다. 반면 40대 이후는 감소하는 추세다. 온라인 불법 사이트들은 배당률이 높다고 요란하게 광고를 하고, 순진한 대학생들은 게임을 연구하거나 베팅하는 법을 공부하면 승률을 높일 수 있다고 착각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도박 중독으로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환자는 2005년 210명에서 2009년 612명으로 4년 사이 약 3배로 늘었다. 그러나 이 수는 치료를 받아야 할 도박 중독자 중 0.1%도 안 되는 미미한 비율이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3∼5%가 도박 중독의 위험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흔히 중독이라고 하면 술이나 약물을 떠올리기 쉬운데, 도박 중독도 도박이라는 행위에 중독돼 대뇌에 병적인 변화가 진행된 상태여서 정신의학에서는 ‘충동조절장애’의 일종으로 분류한다. 도박 중독자들은 중독에 관계되는 도파민계 신경이 풍부한 대뇌 선조체라는 부위의 활성도가 낮아져서 일상 활동으로는 도파민을 유지할 수 없다. 그래서 더 강한 자극, 즉 도박을 통해 뇌 활성을 높이려고 하는 것이다.

도박 문제로 인한 폐해와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에서 더 적극적인 대국민 예방 교육과 홍보, 도박 중독 예방·치유 서비스의 제공이 절실히 요구된다.

첫째, 불법 도박을 적극적으로 단속해야 한다. 불법 도박은 불법 대출, 근로 능력 감퇴, 성 매매 등으로 연결되는 출발점이다. 특히 젊은이들의 미래와 우리 사회의 안전을 망치고 있다. 그러나 불법 도박 단속 실적은 미미하다.

둘째, 도박 중독자를 체계적으로 파악하고 치료 기법을 전파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허브가 필요하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중증의 도박 중독자가 정신건강의학과 치료와 연계되어 있지 않고,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중독예방치유센터가 허브 역할을 할 만큼 인력과 예산이 풍부하지 않다.

셋째, 예방·치유 사업의 대상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도박을 직접 하는 사람보다 오히려 비도박자에게 홍보와 안내를 더 많이 해야 한다. 도박 중독자 본인은 정작 중독에 대한 인식이 없기 때문에 가족과 친구 등 주변 사람들에게 홍보를 해야 한다.

넷째, 도박 중독 예방 교육은 청소년 시기부터 실시해야 한다. 어른이 되면 이미 늦다. 학생들이 음주나 마약과 달리 도박 예방 교육은 받지 못하고 있는데, 어려서부터 각인을 시켜야 한다. 학교보다는 페이스북이나 인터넷을 이용하는 편이 교육 효과가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는 만큼 청소년의 생활 패턴에 맞는 효과적인 교육 방법을 찾는 노력도 필요하다.

경기가 좋지 않을수록 사행산업을 통해 손쉽게 재원을 마련하고 싶은 유혹이 생긴다. 하지만 젊은 학생들이 도박에 중독된 나라가 선진국이 되기는 힘들 것이며, 그 부메랑은 고스란히 미래 세대의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우종민 인제대 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온라인 불법 도박#도박 중독 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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