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희균]싸이가 만약 공부를 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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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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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싸이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모습을 보면서 3년 전 만난 국제기구의 교육 담당 박사가 문득 떠올랐다. 북유럽 출신으로 유아 교육을 20년 가까이 연구한 전문가였다.

그는 수십 개 국가를 찾았지만 한국 방문을 앞두고는 유독 마음이 설렜다고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한국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가 다른 선진국보다 눈에 띄게 높은 걸 알았기 때문이다. 비결을 찾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호기심이 동했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 일주일 정도 머물면서 유치원과 초등학교 몇 곳을 돌아본 결과 이유를 알 것 같다고 했다. 학습 능력에 대한 기대와 요구 수준이 굉장히 높다는 진단이었다. 다른 나라보다 아이들이 읽기와 셈하기를 배우는 진도가 빠르다고 평했다. 그는 “자녀 교육에 대한 부모의 열정이 높더라. 교사도 학생에게 가르친 내용을 일일이 테스트하고 엄격하게 순위를 매기는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여기까지가 공식적인 인터뷰였다. 외국의 교육 전문가를 만날 때마다 드는, 뭔가 개운치 않은 점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정작 한국에서는 교육에 문제가 많다고 하는데….

인터뷰를 마치고 차를 한잔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때였다. 그가 목소리를 낮추더니 좀 이상한 점이 있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된다며 넌지시 물었다. “왜 한국에서는 공부가 탤런트가 아니냐?”

처음엔 질문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뜻인지 몇 번이나 확인하고 난 뒤 머리가 멍해졌다. 공부를 잘하는 능력은 타고난 재능이나 소질(talent) 중 하나인데, 한국인은 공부를 기본 능력처럼 여긴다는 말이었다. 모든 사람이 노래를 잘하고 축구를 잘하지 않는데, 왜 유독 공부는 누구나 잘해야 하느냐는 지적. 교육 기자를 5년째 하면서 받은 질문 중 가장 뜻밖의 물음표였다.

그는 다른 나라의 학교를 방문하면 △이 아이는 만들기를 잘한다 △저 아이는 수영을 잘한다 △저 학생은 유머러스하다고 소개한다고 전했다. 반면 한국 학교는 △수학 교과 우수 학교다 △우리는 서울 시내에서 학력이 몇 번째로 높다고 소개를 하더란다. 다른 나라 유치원에서는 골고루 먹는 습관, 친구와 잘 어울리는 능력을 가르치지만 한국 유치원에서는 복잡한 지능개발 교구, 원어민 교사의 수업 시간을 자랑하더라고 했다.

기자도 학창 시절 공부가 타고난 재능 중 하나라는 생각은 별로 해본 적이 없다. 내가 아는 교사, 학부모 중 아이에게 그렇게 말해주는 이는 없다. 학생이라면 공부는 응당 잘해야 마땅했다. 설령 머리가 좋지 않더라도 남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면 얼마든지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고들 믿었다.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

그를 만난 뒤로 내 생각은 꽤 달라졌지만 안타깝게도 교육 현실은 그대로다. 공부 이외의 재능으로는 사회적으로 성공할 확률이 낮은 ‘학교 이후의 세상’ 탓이 가장 클 게다. 그런 마당에 공부는 으레 잘해야 한다고 여기는 우리의 단선적인 인식을 바꾸긴 쉽지 않다.

음악에 소질이 있는 아이에게는 싸이의 길을, 운동에 자질이 있는 아이에게는 김연아의 길을, 공부에 재능이 있는 아이에게는 학업의 길을 터주자. 학생 개개인의 재능을 키워주는 게 국가 수준의 높은 학업 성취도보다 의미 있지 않을까. 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부터 다시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

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foryou@donga.com
#싸이#강남스타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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