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구식 전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의원은 자신의 9급 비서가 지인들과 공모한 디도스 사건의 억울한 희생자다. 경찰, 검찰 심지어 특검 수사에서도 그의 무관함이 확인됐다. 그러나 그는 이 사건으로 당을 떠나야 했고,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으로 4·11총선에 출마했으나 낙선해 국회의원직도 잃었다. 6월 하순 특검 수사 발표 직후 새누리당에 복당 신청을 했건만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이다. 말썽 생기면 내치고 보는 새누리당
최구식은 자신의 결백을 호소했다. 상식적으로 보더라도 이 사건에 국회의원이 개입됐을 가능성은 낮았다. 그러나 작년 12월 27일 공식 출범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는 첫 ‘쇄신 조치’로 그에게 탈당을 권유했다. 당 대변인은 “(검찰) 수사 결과 무죄가 입증되면 당에 복귀하면 된다”고 밝혔다. 다음 날 한 의원이 최구식에게 전화를 걸어 탈당을 권유했다. 그 다음 날엔 새벽까지 검찰 조사를 받고 나와 곤히 자고 있던 그에게 다른 의원이 전화를 해 “왜 빨리 탈당하지 않느냐”고 다그쳤다. 며칠을 고민하던 최구식은 지역구 지지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당에 탈당을 통보했다.
당시 심정에 대해 최구식은 “억울하기도 하고, 야속하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신의 비서가 관련된 도의적 책임도 있고, 검찰 수사로 무관함이 밝혀지면 복당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순전히 당을 위한다는 충정 하나로 탈당을 결행했다고 한다. 그는 할 말이 많은 듯했으나 아꼈다. 다만 당이 곤경에 처한 소속 의원을 지켜주지는 못할망정 골칫거리가 생겼다고 절차도 원칙도 무시하고 무조건 내치고 보는 풍토는 사라져야 할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새누리당은 비례대표 공천 뒷돈 수수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현기환 전 의원에 대해서도 지금 같은 수순을 밟아가고 있다. 현기환은 당 최고위원회에 출석해 “돈을 받았으면 자살하겠다”는 말로 결백을 주장했다. 검찰 조사도 자청했다. 물론 최구식의 경우와 달리 그의 혐의는 나중에 사실로 드러날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아직까지는 아니다. 그런데도 새누리당 지도부는 앞뒤 가리지 않고 그에게 탈당부터 권유했고, 거부하자 윤리위원회를 열어 “당 발전에 극히 유해한 행위를 하고 당의 위신을 훼손했다”는 이유로 제명을 결정했다. 그로부터 사흘 뒤에야 진상조사위가 구성됐다.
새누리당의 처사는 민주통합당과는 대조적이다. 저축은행 비리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고 아직 혐의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현기환과 같은 처지다. 극성맞게 범죄 혐의자 감싸는 민주당
그러나 민주당은 위아래가 똘똘 뭉쳐 박지원 비호에 총력을 쏟고 있다. 단순한 비호를 넘어 검찰과 정권을 향해 정치공작 운운하면서 공세까지 취한다. 박지원은 검찰 소환에 완강히 버티다 마치 선심이라도 쓰듯 한 번 나가 조사를 받았다. 그러자 민주당은 다시 그를 보호하기 위해 8월 ‘방탄 국회’를 소집했다. 민주당은 심지어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정봉주 전 의원을 구하려는 극성까지 부렸다.
새누리당더러 왜 민주당처럼 못 하느냐고 힐난하려는 게 아니다. 민주당의 처사는 명백히 잘못됐다. 범죄 혐의자와 최종 확정 판결을 받은 범죄자까지 비호하는 것은 민주국가의 법치를 희롱하는 일이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처사도 민주정당에 걸맞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정치인에게는 헌법상 유죄 확정 판결 전까지의 무죄추정(無罪推定) 원칙을 적용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 그게 어렵다면 최소한 국가기관의 수사 결과까지는 기다려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불미스러운 사건이 터지면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대뜸 구성원을 희생양으로 삼고 보는 새누리당식의 생존법은 무책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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