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영배]‘노동계 편들기’로 변질된 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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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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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상임부회장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상임부회장
최근 경제민주화 논란과 함께 정치권이 연일 대기업을 개혁의 대상으로 비판하고 있다. 대기업에 대한 국민의 시선도 차갑다. 얼마 전 한 최고경영자(CEO)를 만난 자리에서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나마 기업을 이해하는 정치인들도 국민정서 때문에 도울 수 없다고 하니, 이제는 기업 스스로 적극적으로 국민을 설득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무박 3일의 해외 출장을 마치고 몇 시간 전 귀국한 그는 대화 내내 졸음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글로벌 전쟁의 최전방에 선 이 기업인은 국내에서 벌어지는 갈등이 후방에서 일어나는 소모적 현상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매출의 80%를 차지하던 수출이 급감하면서 글로벌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고 동분서주하는 그 경영자 앞에서 필자는 미안하고 측은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우리 기업에 대한 비판은 잘못 알려진 사실에 근거하는 것이 많다. 흔히들 대기업을 비판하는 비정규직, 원하청, 대형마트 문제는 복합적 원인이 작용하여 발생한 것이지 대기업 탓으로만 돌릴 일이 아니다. 자발적으로 비정규직을 선택한 근로자가 절반이 넘고, 전체 비정규직 근로자의 94%가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대기업이 착취하고 있다는 대기업 하청 중소기업의 평균 순이익률은 대기업과 관계없는 중소기업의 두 배에 달한다. 자영업자가 어려운 근본적 원인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두 배에 달하는 자영업자 비중으로 인한 치열한 경쟁과, 자영업자 스스로의 경쟁력 부족에 기인한 소비자 선택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진실에도 불구하고 모든 문제가 오로지 대기업 때문인 것처럼 비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경제민주화를 명분으로 대기업과 일반 국민이라는 대립 구도가 형성되고 정치권은 선명성 경쟁이라도 하듯 이를 부각시키고 있다. 경제민주화가 새로운 개념도 아니지만 이를 부정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1987년 개헌 당시,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규정한 제119조 1항의 보완적 개념으로 도입된 것이 2항의 경제민주화다. 따라서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등 수많은 제도가 이미 경제민주화를 위해 시행되고 있다.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이미 구현되고 있는 경제민주화가 노동계와 일부 정치권에 의해 증폭되어, 자유시장경제의 근본을 부정하는 움직임으로 연결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1987년 개헌 당시 노동계가 경제민주화를 빌미로 ‘경영참가권’과 ‘이익분배균점권’을 헌법에 명시해 달라는 과도한 요구를 했던 경험도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한다.

최근 여야 모두 기업에 대한 눈길을 부정적 측면에 맞추고 있어 그 누구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다. 정치권이 개별 기업 노사관계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위해 기업별 특위 구성을 추진하고, 노동계는 국회가 사측을 압박해 주리라 기대하고 노사 대화를 중단하고 있다. 이미 30∼40개에 달하는 노조가 국회로 달려가 개별 기업 노사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특위 구성이나 청문회 개최를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경제민주화가 노동계 편들기로 변질된 작금의 상황은 노사관계 왜곡을 넘어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기업들에 무력감마저 안겨주고 있다. 해외시장에서 선진국 기업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할 CEO들이 국내 문제에 집중해야 할 상황이 되었으니 정말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정치권도 경제민주화가 기업 압박의 수단이나 일방적인 노동계 편들기로 변질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 글로벌 경기침체의 파고가 눈앞에 다가온 지금, 이념이나 이상보다 시급한 것은 일자리와 경제라는 점을 다 같이 인식했으면 한다.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상임부회장
#기고#김영배. 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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