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2007년 대선 직전 김경준 씨 ‘기획입국설’의 근거가 된 ‘BBK 가짜 편지’가 대필(代筆) 편지였고 편지 작성의 배후는 없다는 수사 결과를 어제 발표했다. 이 편지는 당시 알려진 것처럼 미국에서 김 씨와 같은 교도소에 수감됐던 신경화 씨가 쓴 것이 아니라, 신 씨의 동생 신명 씨가 지인인 경희대 직원 양승덕 씨의 부탁을 받고 대신 썼다는 것이다.
17대 대통령선거 엿새 전인 2007년 12월 13일 홍준표 전 한나라당 대표(당시 클린정치위원장)가 이 편지를 공개했다. 편지엔 “자네(김경준)와 고민하고 의논했던 일들이 확실히 잘못됐다고 생각하네. 자네가 ‘큰집’하고 어떤 약속을 했건 우리만 이용당하는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BBK의 실소유주가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라고 주장했던 김 씨는 선거 한 달 전 귀국했다. ‘큰집’이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로 해석되면서 김 씨가 대가를 약속받고 귀국했다는 기획입국설이 제기됐다.
검찰은 이 편지가 양 씨와 김병진 두원공대 총장(당시 한나라당 상임특보),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당시 한나라당 BBK대책팀장)을 거쳐 홍 전 대표에게 전달됐다고 밝혔다. 양 씨가 한나라당에 공을 세울 속셈으로 대필 편지를 기획했고, 편지를 건네받은 김 총장은 양 씨를 한나라당에 소개했다. 양 씨는 실세가 뒤를 봐주고 있는 것처럼 암시해 신 씨를 안심시켰다.
마치 노무현 정부가 이명박 후보를 흠집 내기 위해 김 씨를 끌어들인 것처럼 편지를 조작한 사건이다. 이 후보 진영에선 호재로 반겼을 것이다. 그러나 BBK 편지 관련자들은 모두 무혐의 처분됐다. 양 씨와 신 씨는 신경화 씨의 얘기를 사실로 믿고 이를 토대로 편지를 썼으며, 이 후보 캠프는 ‘배후’가 아니라서 혐의가 없다는 것이다. 선거 판에서 반대급부를 노리고 문건을 조작한 사람들, 오로지 이기겠다는 욕심에 출처가 불분명한 문건을 폭로한 캠프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문건의 출처나 근거를 따지지 않고 공표를 하는 행위에 대해 사후에라도 분명한 법적 책임을 지워야 한다. 선거만 끝나버리면 ‘아니면 말고’ 식으로 넘어가는 행태가 되풀이되다 보니 역대 대선 때마다 흑색선전이 판을 친다. 2002년 대선 때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겨냥한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 기양건설 비자금 수수설, 20만 달러 수수설은 대선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이슈였다. 하지만 모두 근거 없는 흑색선전으로 드러났다. 이번 대선에서도 조작문건이나 흑색선전이 난무할 가능성이 높다. 무조건 이기고 보자는 목적으로 국민을 속이는 일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