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모래알을 씹는 기분일 텐데도 갈비와 된장찌개로 밥 한 그릇을 싹 비웠다. 지난해 7월 미국 콜로라도스프링스의 한 한식당에서 마주 앉은 최나연이었다. 당시 그는 US여자오픈에 출전했다 예선 탈락의 수모를 안은 뒤 점심을 먹고 있었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 어떻게 위로해야 하나 망설이던 기자의 고민은 기우에 불과했다. “다음에 잘하면 되는 거죠. 그래도 배운 게 많아요.” 대회 주최 측이 제공한 렉서스 SUV를 직접 몰고 주차장을 떠나는 뒷모습이 씩씩해 보였다.
그로부터 1년이 흘러 최나연은 지난해 수모를 안았던 바로 그 US여자오픈에서 어린아이 상반신만 한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췄다. 자신의 우상 박세리가 14년 전 맨발 투혼 끝에 우승했던 코스에서 생애 첫 메이저 챔피언에 오르는 황홀한 기쁨을 누렸다.
최나연은 2008년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진출 후 이번 US여자오픈까지 101개 대회에서 예선 탈락은 두 번밖에 없다. 통산 6승의 기록만큼이나 자랑할 만하다. 첫 번째 컷 통과에 실패한 때는 2010년 역시 메이저대회였던 LPGA챔피언십이었다. 63개 대회 만의 첫 경험이라 충격이 컸다. 하지만 불과 일주일 만인 그 다음 주 코닝클래식에서 시즌 첫 승을 달성했다.
예선 탈락을 하면 단 1원의 상금도 없다. LPGA에서 뛰는 딸을 둔 한국 부모들은 “우승은 못해도 예선 탈락만이라도 안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자주 한다. 출전 경비도 못 뽑았다는 현실적인 이유뿐 아니라 자칫 선수를 장기 슬럼프에 빠지게 하는 독(毒)이 될 수 있어서다.
최나연은 달랐다. 예선 탈락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일단 암초에 부딪혀도 헤쳐 나갔다. 탄탄한 기본기뿐 아니라 무엇보다 감정 컨트롤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시절 최나연은 “부모님이 안 계시느냐”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또래들과 달리 홀로 골프 훈련을 할 때가 많아서였다. 한창 응석을 부릴 5학년 때 인도네시아 전지훈련을 가기 위해 혼자 비행기에 올랐다. 6학년이 돼서는 제주에서 70일 동안 가족과 떨어져 공을 쳤다. “골프장 가는 시내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친구 아빠가 택시 타라고 5만 원 주신 적도 있어요.”
LPGA투어 진출 후 무관(無冠)에 그쳤던 2009년 그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부모님에게 독립선언을 했다. “뭐가 되든 홀로 해볼게요.” 그로부터 몇 달 후 삼성월드챔피언십에서 그토록 고대하던 첫 우승을 이뤘다. 외롭고 힘들어도 목표를 향한 일념으로 버텼다.
자립심이 강한 최나연이 몇 해 전 불쑥 평소 거의 하지 않던 아버지 얘기를 꺼낸 적이 있다. “아빠는 대회 기간 잘 치든 못 치든 일단 집에 오면 골프 얘기를 전혀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너무 편했죠. 지난 일은 빨리 잊고 새롭게 준비할 수 있었죠.” 그가 이번 US여자오픈에서 선두로 출발한 마지막 라운드에 줄곧 평정심을 유지했고 10번홀 트리플 보기에도 물병 한 병 집어던지고는 흔들리지 않았던 데는 이유가 다 있었다.
피겨 여왕 김연아가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기까지 엉덩이가 얼얼할 정도로 수천 번씩 넘어져야 했다. 프로야구에서 ‘양신(梁神)’으로 불리는 양준혁은 “3할 타자도 열에 일곱 번은 죽는다. 쉽게 죽지 않을 뿐”이라고 했다.
인생 만사가 마찬가지 아닐까. 누구에게나 실패와 좌절은 찾아온다. 위기를 성공의 기회로 바꾸는 건 역시 마음에 달려 있다.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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