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박용]‘포털 동물원’과 반론보도닷컴

  • 동아일보

박용 산업부 기자
박용 산업부 기자
“전화 협박에 놀란 직원들이 손을 벌벌 떨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하더군요. 한동안 컴컴한 밤에 엘리베이터를 타면 누군가 습격해 오지 않을까 뒤를 돌아보곤 했습니다.”(한국광고주협회 관계자)

광고주협회는 지난해 5월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과장·왜곡 보도로 피해를 본 기업 사례를 수집 분석해 ‘나쁜 언론’ 5곳을 발표한 뒤였다. 기업들 사이에서는 “속 시원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반면 일각에서는 “언론 길들이기”라고 반발했다. “나쁜 언론 발표를 철회하라”는 항의도 쏟아졌다. 정치권 등 유력인사의 은근한 압력도 적지 않았다. 무작정 광고주협회 사무실로 쳐들어와 ‘회칼’ 운운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어깨’도 있었다. 협회 측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항의 방문이 있을 때 녹음까지 했다고 한다.

협회는 이런 소동을 겪고도 올해 다시 칼을 뺐다. 음해 왜곡보도에 대한 기업들의 반론(反論)과 해명을 다루는 ‘반론보도닷컴’(banronbodo.com)을 9월 초 개설해 ‘사이비 언론’과의 정면 승부를 다짐하고 있다. 사이비 언론의 왜곡 보도를 즉각 반박하고, 기업들이 공개를 꺼리는 피해 사례도 과학적, 체계적으로 수집해 ‘언론 길들이기’의 오해도 벗겠다는 것이다.

기업이 사이비 언론의 등쌀에 시달리고, 기업 단체가 ‘언론 길들이기’라는 일각의 비판을 무릅쓰고 이를 감시하겠다고 나선 건 누가 봐도 정상적인 현실은 아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단기간 양적으로 팽창한 한국 인터넷 언론과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대한 지나친 의존 현상과 무관치 않다.

인터넷, 모바일 등 정보기술(IT)의 발달로 수백 명의 기자, 수천억 원이 들어가는 윤전시설과 막대한 종이값, 방송 제작 및 송출 시설 없이도 ‘언론사’를 세울 수 있게 됐다. 세 명만 있으면 인터넷 언론으로 등록할 수도 있다. 인터넷 언론은 2005년 286곳에서 올해 6월 3578곳으로 급증했다. 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진 2009년 이후에도 한국 인터넷 언론은 2200여 개가 늘었다.

양적 팽창의 그늘 속에서 사이비 언론이라는 독버섯도 자랐다. 기업들은 “사이비 언론이 포털 사이트를 등에 업고 광고, 금품 등을 요구한다”고 하소연한다. 기술을 개발하거나 콘텐츠에 투자하지 않아도 한국 인터넷 시장을 점령한 네이버, 다음, 네이트 등 ‘포털 동물원’의 우리 속에만 들어가면 얼마든지 ‘관객’을 모으고 영향력을 확대하며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를 악용한 것이다. 한국 인터넷 생태계의 포털 의존이 사이비 언론과의 의도치 않은 공생 고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홍보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에 이런 위협은 더 치명적이다.

콘텐츠 투자나 기술 개발 대신 포털 동물원에 기생하는 데 여념이 없는 사이비 언론의 순기능은 거의 없다. 악화가 양화를 내쫓는 잘못된 구조에서는 건전한 인터넷 언론도 발붙일 자리가 없고 도매금으로 넘어가기 일쑤다. 기업은 물론이고 양질의 언론과 소비자에게도 그 피해가 돌아간다.

반론보도닷컴의 등장이 사회적 주목을 받는 것은 포털을 숙주(宿主)로 한 사이비 언론의 폐해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반론보도닷컴이 기형적인 포털 동물원 속의 사이비 언론을 솎아내고 인터넷 언론의 질적 발전을 유도하는 ‘혁신 촉매제’의 역할을 하길 바란다. 물론 “과학적이고 투명한 방법으로 사이비 언론을 감시하겠다”는 초심을 잃는다면 ‘언론 길들이기’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는 점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박용 산업부 기자 parky@donga.com
#광고주협회#나쁜 언론#반론보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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