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하종대]99%를 위해 1%를 멸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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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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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대 사회부장
하종대 사회부장
“이번에 모두 까발려야 한다. 다 쓸어 없애야 한다.”

그는 말투부터 투박했다. 개○○, 씨△△ 등 일반인도 입에 담기 민망한 욕설이 주저 없이 튀어나왔다. 말본새가 ‘스님이 맞나’ 싶을 정도다. 최근에 조계종 스님들의 도박 및 성매수 의혹을 제기한 성호 스님(속명 정한영·54)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는 폭로하면서도 물증은 제시하지 않았다. 자승 총무원장이 성매수를 했다고 주장하면서도 “증거가 있느냐”고 물으면 “함께 간 명진 스님에게 물어봐라”는 식으로 말을 흐렸다. “신밧드 룸살롱 손님 가운데 단골은 90%가 스님”이라고 주장한 근거를 묻는데도 “이는 지나가는 개도 다 안다”며 질문의 핵심을 비켜갔다.

조계종 총무원 측은 그를 스님으로 대우하지도 않는다. 성호 스님이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해 일부 스님의 성매수 의혹까지 제기한 15일 조계종 측은 그가 사찰에서 여승을 강제로 범하려다 저항에 부닥치자 폭행했다며 패륜범(悖倫犯)으로 몰아세웠다. 하지만 그는 “새빨간 조작이니 여승에게 직접 물어보라”며 강하게 부인했다.

그렇다고 성호 스님의 폭로가 사실이 아니라고 몰아붙이거나 낭설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다. 그가 폭로한 승려들의 억대 도박 주장은 이를 입증하는 동영상까지 있다. 폭로할 게 많다던 그는 최근 기자에게 “어느 원로 스님은 은처(隱妻)를 두고 있으며 젊은 승려 시절 성폭행을 한 주지 스님도 있다”고 귀띔했다.

사실이라면 대부분 사바라이(四波羅夷)에 해당하는 중죄다. 사바라이란 승려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4가지 계율로 살인 절도 음행과 깨닫지 못하고도 깨달은 것처럼 위장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어기면 원칙적으로 멸빈(滅빈·승적을 박탈해 영원히 종단에서 추방)에 처한다.

문제는 극히 드물지만 실제로 이런 승려가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성호 스님은 “이런 승려가 전체 스님의 1% 안팎”이라며 “이들을 종단에서 쫓아내야 한국 불교가 제대로 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깨달은 큰스님의 철저한 자유인으로서의 무애(無애·거리낌이 없음)행위를 깨닫지도 못하면서 겉모습만 따라하는 일부 몰지각한 스님들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큰스님의 무애행위’를 자기 비행의 합리화에 악용하기도 한다.

한국 불교 30여 종단 중 최대 종파인 조계종은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승려가 1만3000여 명에 이른다. 만 20세 미만의 사미, 사미니까지 포함하면 1만5000여 명이나 된다. 이 중 하안거(夏安居)와 동안거(冬安居)에 참여해 참선하는 승려만 2000∼3000명에 이른다고 한다. 결국 극소수의 ‘비행 승려’가 전체 조계종 승단을 욕보이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조계종은 ‘스님 같지 않은 스님’의 폭로로 볼지라도 이를 무시하거나 무마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이를 계기로 의혹을 철저히 규명해 진실을 밝히고 나아가 전체 승단을 정화하는 계기로 삼는 게 옳다. 진실을 파헤치고 공개하는 것이야말로 조계종이 거듭나는 첫걸음이다.

조계종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18일 “승가공동체쇄신위원회를 설치해 조속한 문제 해결과 종단의 화합 및 안정을 도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쇄신이 조계종이 참으로 1500만 불교 신도뿐 아니라 5000만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검찰도 조사 임무를 맡은 만큼 진실을 파헤치는 일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1%도 안 되는 극소수 ‘비행 승려’가 수월(水月) 성철(性徹) 스님으로 이어지는 한국 불교의 자랑스러운 전통과 1700여 년간 이어온 역사를 욕되게 하도록 놔둬서야 되겠는가.

하종대 사회부장 orionha@donga.com
#조계종#성호 스님#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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