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양 육대주’는 세계 곳곳을 의미하는 관용적인 용어다. ‘오대양 육대주를 누빈다’고 할 때 보통 사람에게 육대주는 가능할지 몰라도 오대양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을 누빌 수는 있어도 북빙양(북극해)과 남빙양(남극해)은 접근조차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 극지는 기후나 지형 때문에 여행은커녕 탐험도 어렵지만 해당 지역에 대한 영유권 문제로 접근조차 쉽지 않다. 북극은 주인이 여럿이어서 관할권 다툼이 치열하다. 북극권에 있는 그린란드는 덴마크, 젬랴프란차요시파는 러시아, 우리나라의 다산과학기지가 있는 스발바르 제도는 노르웨이의 영토다. 반면 남극은 주인이 없다. 1961년 발효된 남극조약에 따라 만든 남극조약협의당사국(ATCP)이 남극에 대한 법이나 규정을 다룬다. 따라서 북극에서는 북극이사회(AC)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남극에서는 ATCP의 눈치를 봐야 한다.
극지는 기초과학 연구에 있어서 신대륙이나 마찬가지다. 두꺼운 얼음은 지구의 과거를 보여주는 무진장한 화석과 다름없고, 극지 환경은 인간의 오염 영향을 관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리트머스 시험지다. 백야(白夜)나 태양풍 같은 극지의 고유한 특징에 따른 연구는 다른 지역에서는 절대 시도할 수 없는 최고의 자연실험실이다.
최근 들어 중국과 일본이 자원 개발이나 영토 확장 차원에서 극지 탐사를 추진하고 있어 연안국은 물론이고 관련 국제기구와 비정부기구(NGO)까지 긴장시키고 있다. 특히 중국은 국가해양국 아래 극지연구소를 두고 쇄빙선을 이용하여 북극 탐사를 추진하면서 자원 개발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중국을 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기초과학을 담당하는 정부기관에서 극지 연구를 관할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갑자기 국토해양부가 극지연구소에 대한 관할권을 주장하면서 교육과학기술부와 갈등을 빚고 있다. 7월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출범을 앞두고 한국해양연구원에 딸린(부설) 극지연구소를 그대로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정부가 확정한 ‘정부출연연구기관 선진화 방안’을 국회에 상정하지 못한 탓이기도 하고 교과부 산하 기초기술연구회가 해양연구원과 극지연구소를 미리 분리하지 못한 탓이기도 하다.
어쨌든 극지에 관한 국제회의에 국토부 장관이 참석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선진 각국의 기초과학 담당 장관이 즐비한 가운데 중국과 우리나라만 국토해양 담당 장관이 어색한 명함을 내밀며 멋쩍은 악수를 청하게 될 것이다.
일본의 독도 망언에 발끈한 국토부 장관이 독도를 방문해서 ‘독도는 우리 땅’을 외치는 것만큼 일본의 꼼수에 말려드는 바보스러운 짓도 없다. 마찬가지로 정부가 극지에서 기초과학 연구를 통한 성과나 지구온난화에 대한 기여를 앞세우기보다 자원 개발 의도를 뻔히 드러내면서 오대양 가운데 나머지 두 대양을 누비겠다는 것은 의욕만 앞선 하수의 포석처럼 보인다.
이주호 교과부 장관은 지난해 4월 독도를 방문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한 방사능 오염 공포로 불안한 가운데 문부과학성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교과서 검정 결과까지 발표하면서 일본에 대한 감정이 흉흉해진 때다. “우리 땅에 방사능 감지기를 설치해 우리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왔다”는 이 장관의 발언은 원전사고와 교과서 문제를 절묘하게 연계했다는 점에서 자못 감동적이다. 구태여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떠들지 않고도 얼마든지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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