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시각장애 인권변호사 천광청(陳光誠) 씨가 베이징 주재 미국대사관으로 피신해 미국과 중국이 인권문제를 놓고 다시 격돌하게 됐다. 천 씨는 비인간적인 산아제한 정책을 비롯한 중국의 반(反)인권 실태를 끈질기게 비판해 국제적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2006년 타임지 선정 세계 100대 영향력 있는 인물로 뽑히기도 했다. 그는 4년 3개월간 감옥생활을 하다 2010년 석방된 이후 고향인 산둥 성 가택에 연금돼 왔다.
천 씨는 4월 22일 집을 빠져나와 중국 반체제 인사들의 도움으로 베이징으로 이동해 미국대사관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중국의 인권 상황이 얼마나 열악한지 거듭 확인시켜 준 사건이다.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는 변호사가 당국의 탄압을 견디다 못해 외국 대사관으로 피신할 정도니 힘없는 보통 중국인은 어떨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중국의 인권 문제는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 씨가 2010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세계인에게 깊이 각인됐다. 국제사회는 중국의 인권 상황이 개선되는 계기가 되길 기대했지만 중국은 거꾸로 류 씨의 출국을 금지하고 탄압을 강화했다. 노벨위원회는 그해 12월 10일 류 씨가 없는 빈 의자를 놓고 평화상 시상식을 진행했다.
이번 사건은 1989년 6월 톈안먼 사태 때 중국의 반체제 물리학자 팡리즈가 주중 미국대사관에 피신한 사건과 닮았다. 팡리즈는 13개월 뒤 미국으로 망명했다. 중국 정부는 올해 2월 왕리쥔 충칭 시 공안국장이 청두 주재 미국영사관에 들어가 망명을 요청한 사건에 이어 다시 골머리를 앓게 됐다. 미국은 왕리쥔의 요청을 거부했으나 망명 시도 사건은 충칭 시 서기 보시라이의 낙마를 거쳐 중국 권력층을 흔드는 대형 스캔들로 확대됐다.
팡리즈 사건 때 주중 미국대사였던 제임스 릴리 씨는 팡리즈에게 김영삼 전 대통령이 가택연금 때 쓴 ‘自由(자유)’라는 글씨를 액자에 넣어 선물하며 용기를 북돋웠다. 23년이 지났지만 중국의 반체제 인사들은 자유를 얻지 못하고 있다. 중국이 변하지 않으면 또 다른 팡리즈 류샤오보 천광청이 나올 것이다. 중국이 세계의 지도국이 되려면 먼저 후진적 인권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세계를 연결하는 시대에 중국 정부가 인권 탄압을 계속하면 세계 지도국은커녕 문명국가가 될 수 없다. 미국도 천광청 사건을 중국에 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기회로 적극 활용해 중국 인권운동가들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