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종진]첫 투표용지 들고 울먹인 노인들… 재외국민선거, 비용이상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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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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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일본 주재 고베총영사관 영사
박종진 일본 주재 고베총영사관 영사
2004년 일본과 미국, 캐나다 거주 재외국민의 헌법소원 제기로 출발하여 시작된 제19대 국회의원 재외국민선거가 세계 158개 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치고 개표만을 남기고 있다. 12만3000여 명이 신청해 5만6000여 명이 투표소를 방문하여 투표권을 행사했다. 재외국민선거 신청률과 투표율은 당초 기대치보다 다소 낮았지만 우리나라 선거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중차대한 계기가 됐다.

많은 재외국민이 참여하여 참정권을 행사하였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재외국민선거는 다른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 예로 어느 노인분이 투표장에 오셔서 투표용지를 받은 후 기표소에 들어가시더니 어깨를 들썩이고 계셨다. 무슨 일인가 싶어 보니 양 볼에 눈물을 주르륵 흘리면서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계셨다. 일순간 투표소는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분은 일본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아오며 한 번도 해보지 못한 투표를 일본땅에서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는 말씀을 하셨다. 물론 이런 분들이 한두 분이 아니었다. 그 밖에도 투표 후 가족들과 기념 촬영을 해서 집에 걸어 놓겠다고 말씀하시던 분, 자녀와 함께 투표소를 방문하여 한국인임을 일깨워주시던 분, 자동차로 3시간 넘는 거리에서 휠체어를 타고 오셨던 분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가슴 뭉클한 사례들이 많았다.

이들이 한국인임을 잊지 않고 한평생을 살아 온 결실로 얻은 소중한 참정권을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재외국민선거의 실효성 내지 경제성 측면에서 계량화하면서 바라봐야만 할까?

특히 일본의 경우 재외국민이 일본에서 거주하는 이유가 태생적으로 다른 나라와는 다르다. 지금 일본 교민사회에서는 일본 지방선거 참정권을 획득하기 위해 다각적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당장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분들에게 이번 재외국민선거의 투표권 행사는 국내에서 마음만 먹으면 쉽게 할 수 있는 투표권과는 그 의미가 다를 것이다. 재외국민 투표를 계기로 우리는 그동안 우리에게 주어진 참정권이라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때로는 행사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권리인 양 오만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선거가 끝나면 투표율과 연계하여 선출직의 대표성이 논란이 되곤 한다. 투표는 최상의 사람을 뽑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뽑아서는 안 될 사람을 떨어뜨리는 행위이기도 하다.

무관심이 선(善)은 아니다. 잦은 선거, 해마다 치러지는 재·보궐선거 등으로 선거피로증을 느낀다고 말하는 분도 있다. 그러나 그만큼 나의 권리행사 기회가 많아진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권리는 행사함으로써 가치가 있는 것이지 묻어 두는 보석이 아니다. 재외투표소에서 어느 노인분이 흘린 눈물의 의미를 되새겨보며 다시금 우리에게 주어진 참정권의 소중한 가치를 생각해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종진 일본 주재 고베총영사관 영사
#기고#박종진#총선#제외국민선거#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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