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성민]‘천안함 사건’이 조작이라니… 남한의 北 하수인들 한심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29일 03시 00분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
태어나서 50년을 살았고 그중 30년은 북한에서 보냈다. 전쟁을 겪은 세대가 아니어서 김일성에 의한 동족살육의 아픔은 겪어보지 못했지만 내 인생 역시 이 시대를 살아온 북한주민 모두와 마찬가지로 전투와 전투로 점철된 인생이었다.

여섯 살 때였던가, 엉덩이를 두드리는 배낭을 메고 모란봉 기슭의 지하 방공호로 시도 때도 없이 달려가던 기억이 떠오른다. 미제 침략자들이 ‘푸에블로호’ 등을 앞세워 공화국에 대한 간첩행위를 일삼다가 마침내 항공모함을 몰고 쳐들어온다고 했다. 방송에서는 아침저녁으로 투쟁을 독려하는 혁명가요가 울려 퍼졌고 고체연료며 비상용 미숫가루를 챙기기에 엄마들이 바빠졌다.

방공호 바닥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감기에 배탈까지 났던 내가 겨우 몸을 추스르던 무렵 방송에서는 또다시 ‘공습경보’를 알리는 날카로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번에는 미국놈들이 비행기까지 몰고 쳐들어온다고 아우성이었다. 북한이 미군 정찰기(EC-121)를 격추시킨 사건을 두고 하는 소리였다.

중학교에 갓 입학하던 해에는 남조선에서 ‘대통령 저격사건을 조작’하여 대결 분위기를 고취시킨다고 했고, 1976년 8월에는 ‘판문점 도끼사건’을 빌미로 방공호의 철문이 다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직장인들은 물론이고 대학생들까지 군 입대를 탄원하는 마당에 중학교를 졸업한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게 열일곱 소년병이 되었던 나는 키보다 큰 기관총을 메고 (북한이 주장하는) 아웅산사건과 KAL기 폭파사건의 ‘주범이자 조작자’인 남조선괴뢰도당을 향해 증오심을 키워나갔다. 2003년 북한의 핵확산방지조약(NPT) 탈퇴 이후엔 금방 전쟁이 터진다는 분위기였고 철모를 뒤집어쓴 군인들이 ‘공격 출발진지’로 달려가기도 했다.

1999년 한국에서 생활하던 그해 6월부터 차례로 터져버린 1, 2차 연평해전과 대청해전 등을 바라보면서 나를 비롯한 탈북자들은 그 모든 ‘전투와 전투’들이 미제와 남조선괴뢰도당에 의해서가 아니라 북조선 당국자들에 의해 자행된 ‘테러와 도발’의 부산물임을 알아버렸다.

대한민국 청와대까지 노렸던 무장공비침투사건과 동해와 서해, 남해에서 이루어진 간첩침투사건들, 하다가 하다가 되는 것이 없게 되자 돌연 잠수함을 몰고 대한민국 영해로 도둑고양이처럼 숨어들어와 정상 임무를 수행하던 초계함을 침몰시키기에 이른 전쟁 광신자들.

속아 살아왔다는 사실에 화가 치밀었고 그보다 더 더러운 북한 당국자들의 거짓에 치가 떨렸다. 2년 전 이맘때 그 차가운 서해 바다에 잠든 젊은 영혼들을 달래며 비장하다 못해 침통한 표정을 짓던 서울시민들과 대통령의 모습을 바라보면서는 나도 죄인인 것 같아 숨 쉬는 것조차 송구스러웠다.

그렇게 분하게 살아온 탈북자들이 대한민국 서울에서 불쑥 만나버린 노동당의 ‘선전원들’, 즉 천안함 사건은 조작된 것이며 북한에 의한 연평도 폭격까지 잘못된 대북정책의 산물이라고 떠벌이고 있는 김정일과 김정은의 하수인들을 우리들의 무덤이었던 북한, 독재자의 품으로 떠밀어 버리고 싶다.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
#기고#김성민#천안함#천안함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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