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역학의 틀을 완성한 과학자 아이작 뉴턴도 한때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재직하던 케임브리지대를 대표해서 1689년에 구성된 새 의회에서 진보적인 휘그당의 의원으로 선출된 것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정당의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된 것과 마찬가지다.
뉴턴의 정치활동에 대해 알려진 사실은 거의 없다. 특별한 활동이나 발언을 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뉴턴은 의회에서 딱 한 번 발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늘 침묵하던 그가 의장에게 발언권을 신청하자 동료 의원들은 놀라서 주의를 집중했다.
“하인에게 창문을 닫으라고 명령해 주십시오.”
당시 46세인 뉴턴은 몸이 약해 감기에 걸리는 것을 늘 불안해했기 때문이다. 위대한 과학자의 이 유일한 발언에 동료 의원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창문을 닫는 데 동의했기 때문일까, 첫 발언을 격려하기 위해서였을까.
뉴턴의 사례로 볼 때 과학자의 정치 참여에 대해 어떤 의견을 낼 수 있을까. 아무리 위대한 과학자라도 정치에는 젬병이다? 뉴턴의 정치적인 식견이나 역량에 대해 알 수는 없지만, 당시 명예혁명이 일어나고 권리장전이 제정되던, 세계사적인 정치의 격동기에 뉴턴이 무슨 의견을 낼 수 있었을까 싶다. 과학사로 보면 뉴턴이 위대한 정치가가 되지 않은 게 오히려 다행일 것이다.
독일의 정치가인 로베르트 미헬스는 저서 ‘정당사회학’에 ‘뉴턴을 위한 변명’처럼 보이는 서문을 실었다. ‘정치나 종교 문제에 대해 자신과 다른 의견을 들으면 심장이 요동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을 건드리고 싶지 않다. 그런 사람들과는 토론이 불가능하다. 심장이 요동치면 두뇌는 멈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특정 단어를 들으면 심장이 요동치면서 두뇌가 멈춰 버리는 정치가가 유독 많아 보인다. ‘천안함’이라는 단어에 핏대를 세우면서 증거 앞에 ‘조작’과 ‘의혹’만 주장하는 사람들. 발생하지도 않은 광우병을 가지고 촛불을 켜고, 막대한 피해를 입힌 구제역이나 조류인플루엔자 앞에서는 ‘촛불’을 꺼버리는 사람들. 아스팔트에서 발견된 기준 이하의 방사성물질을 놓고 호들갑을 떨면서 북한의 핵 문제에는 침묵하는 사람들. 멸종위기종을 위한 예산에는 침묵하다가 4대 강과 강정마을에 가면 목소리가 높아지는 사람들. 블랙아웃 직전의 순환정전 사고는 들쑤시면서 고리원전 정전 사고에는 짐짓 눈을 감는 사람들.
이렇게 특정 단어에 한쪽으로만 예민하기 때문에 심장 박동 수가 갑자기 요동치면서 논리적인 좌뇌의 뇌파가 순식간에 잦아든다. 그래서 여야 할 것 없이 명패를 집어 던지고 전기톱과 해머를 휘두르며 최루탄을 내던지는 것이다.
이번 19대 국회의원 공천 결과를 보면 여당은 구색을 맞추기 위해 일회용 장식품으로 과학자를 배치하고, 야당은 과학기술에 대해서는 두뇌를 멈추기로 아예 작정한 것처럼 보인다. 과학기술 관련 사안에 대해 심장이 요동치면서 두뇌가 멈추는 정치가의 목소리가 더 시끄러워질 것 같아 걱정스럽다. 뉴턴은 이 시끄러운 소리가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창문을 닫아 달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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