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명철]“과학기술이 국가경쟁력”… 비례대표에 과학자 많이 넣자

  • 동아일보

김명철 KAIST 정보보호대학원 책임교수
김명철 KAIST 정보보호대학원 책임교수
19대 총선 후보들에 대한 공천 전쟁이 막바지로 접어든 가운데 이제 비례대표 공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략 20일을 넘기면 심사 윤곽이 잡힐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비례대표는 제도 자체만으로도 정치 발전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동안 비례대표는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 그중에서도 정당 지지율로 의석수를 정함으로써 국민의 의사를 정확히 반영하는 제도로 꼽혀왔다. 정치권에선 성별, 세대별, 계층별 대표들과 정치권 밖의 사회 각 분야 전문가를 아우르는 ‘국민통합’은 물론이고 국회의원의 주요 역할인 입법과 정책 마련, 예산 심사 강화를 위한 ‘전문성 확보’의 통로로 이 제도를 활용해 왔다.

그러나 최근 비례대표 공천이 제도 본연의 목적과 다르게 명망가 위주의 인기투표식 선발에 치우친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선거 승리를 위한 전략은 물론이고 당내 역학 구도상 ‘구색 갖추기’라는 비판도 나온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제도 본래의 목적인 정책 전문성과 대표성은 주목을 끌지 못하고 그 대신 정체성과 개혁성이 비례대표의 자질로 평가받고 있는 형편이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비인기’ 종목이 과학기술 분야다. 이번 비례대표 공천을 심사하는 각 정당 심사위원들 중 과학기술계 출신은 단 한 명도 없다. 한 정당이 밝힌 공천 카테고리에서 과학기술은 아예 빠져 있다. 이는 정책 전문성을 떠나 우선순위, 즉 ‘대표성’에서도 찬밥 신세인 과학기술계의 현 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지식기반 시대에 과학기술을 보는 정치권의 시각과 육성 의지가 어떤지를 살필 수 있는 대목이다.

참여정부와 현 정부 모두 과학기술 발전에 많은 애정을 쏟았다. 그 결과 현재 국가연구개발사업 규모는 약 16조 원이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과학기술 연구개발 비중은 3.7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이스라엘(4.25%), 핀란드(3.84%)에 이어 3위다. 2010년 민간과 공공부문을 합쳐 국내 총 연구개발비는 전년 대비 15.6% 증가한 43조8548억 원으로 세계 7위권이다.

또 GDP의 3분의 1 수준인 100조 원 이상이 과학기술과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관련 있다. 국제특허 출원 건수 세계 5위권, 2011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국가경쟁력 순위는 세계 22위로 역대 최고 성적이며, 이 가운데 과학경쟁력은 세계 5위다. 어려운 재정 여건에서도 미래 성장동력인 과학기술 진흥에 대한 강력한 의지에 힘입은 성과다.

이렇듯 과학기술은 경제는 물론이고 문화, 국방, 복지, 환경, 교육, 외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 발전의 디딤돌 및 국가경쟁력의 밑거름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특별한 부존자원이 없고 고령화사회에 조기 진입한 우리나라에선 과학기술 역량이 곧 국가경쟁력일 수밖에 없다. 특히 원전 문제나 국가 주요 기반시설에 대한 디도스(DDoS·분산서비스 거부) 공격, 금융기관에 대한 해킹 등 최근 사회 문제로 떠오른 사이버 보안 관련 국가적 난제들은 과학기술이 국민 생활과 떼어낼 수 없는 대표 민생 정책임을 잘 보여준다.

그럼에도 유독 국회에선 찬밥 신세다. 지식기반 시대 국가경쟁력의 원천임을 인식하면서도 이런 현실을 정치권이 전문가 영입이라는 비례대표 선출에서조차 반영하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국민을 대표해 정부 정책을 감시하라는 비례대표의 본령에는 인기도보다는 전문성이 적합하다. 전자는 4월 안에 잊혀질 확률이 높지만, 후자는 4년 내내 국민을 위해 쓸 수 있는 자산이 된다.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이번 19대 국회 비례대표 선출이 국가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의회 전문성 확보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김명철 KAIST 정보보호대학원 책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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