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장영수]보수-진보 공통분모 키워나가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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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수 객원논설위원·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장영수 객원논설위원·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민주정치는 주권자인 국민의 뜻을 가장 존중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민주정치를 표방하는 우리 정당들과 정치인들의 태도에서 국민에 대한 존중보다는 권력에 대한 욕구를 더 많이 느낄 때가 있다. 특히 선거를 앞둔 요즘에는 국민을 대하는 정치인들의 태도가 주권자에 대한 존중이 아닌 표에 대한 존중으로 보이는 경우도 많다.

표를 의식해 국민을 더 존중하는 것이 꼭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이념을 실현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정치의 이름만 걸고 선거 승리를 통한 권력의 획득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원칙과 규범을 모두 던져버리는 정치투쟁의 장이 벌어지게 된다.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라는 카를 슈미트의 말처럼 누가 내 편이고, 누가 상대편인지를 구분하는 편 가르기에 열중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 현대사의 가장 아픈 상처 중 하나인 지역 갈등도 정치투쟁 과정에서 이용됐고 이를 위해 확대·재생산됐다. 그 결과는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어둡게 할 정도로 심각한 불신과 갈등이었다. 망국병이라고까지 지칭되던 지역 갈등의 치유를 위해 우리가 지불해야 했던 시간과 노력, 기회비용은 실로 막대했지만 아직도 그 상흔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상태다.

안정과 변화는 모두 필요한 가치

최근 지역 갈등에 못지않은 사회적 갈등이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갈등의 골이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중산층이 붕괴되고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빈부갈등이 심해지고 있는 것도 우려할 만한 문제지만, 최근 이러한 갈등이 보수와 진보의 갈등과 접목돼 그 골이 더욱 깊어지면서 문제의 심각성이 증폭되고 있다.

보수와 진보가 각기 지향하는 가치 또는 성향의 차이로 경쟁과 갈등의 양상을 보일 수밖에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보수가 우선시하는 ‘안정’이라는 가치와 진보가 강조하는 ‘변화와 발전’이라는 가치는 대립적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보수도 변화와 발전을 전면 부정하는 안정을 주장할 수 없으며, 어떤 진보도 안정을 완전히 무시하는 변화와 발전을 주장할 수 없다. 이들의 차이는 강조점의 차이일 뿐이며, 우리의 삶에는 두 가지 모두 필요하다.

따라서 극단적인 보수, 극단적인 진보가 아니라 서로의 장점을 배우고 흡수하는 가운데 균형과 조화를 꾀하는 합리적인 보수, 합리적인 진보가 국민에게는 더 유용하다. 상대를 부정하고 파괴하여 자신만이 살아남겠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고 관철하기 위한 선의의 경쟁을 통해 서로가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보수 또는 진보의 극단화를 견제하는 중도세력이 두껍게 형성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근 우리 정치권에 나타나는 보수-진보의 갈등은 상대를 부정하는 극단적 대립으로 치닫는 양상을 보인다. 보수는 진보를 ‘좌빨’이라 부르고 진보는 보수를 ‘수꼴’이라 비아냥거리면서 상대의 존재가치 자체를 부정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적을 비난하는 가운데 우군의 결집력을 강화시키고, 중도세력을 포섭하는 것을 일종의 선거 전략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중도가 약화될수록 갈등은 더욱 극단적 대립으로 치닫게 된다. 극단적 대립은 과거의 지역 갈등처럼 공동체의 근간을 뒤흔들어 어느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파괴적 갈등을 낳게 될 것이다. 선거가 끝난 후에 이를 원점으로 되돌릴 방법을 찾기 어렵다. 갈등을 야기하고 조장하는 것은 쉽지만 해소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민주’정치의 본질은 적과 동지의 구분이 아닌 갈등의 조율과 통합에서 찾아야 한다. 국민이 원하는 정치적 리더십은 우리 내부에서 적과 동지를 나누어 극단적인 증오를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화합하며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실천적 대안을 마련하고 관철시키는 것이다.

중도 약해지면 좌우대립 극단화

여야가 선거를 앞두고 국민세금 부담을 고려하지 않은 채 경쟁적으로 복지예산을 확충하려는 것이 무책임한 태도인 것과 마찬가지로, 상대 후보와의 차별화를 위해 극단적인 주장이나 공약을 쏟아내는 것도 국민을 무시하는 태도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납득 가능한 합리적 대안이다. 예컨대 대북정책에서 보수와 진보가 강경론과 유화론의 양자택일로 나갈 것이 아니라 북한의 태도 변화를 고려한 탄력적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것에 신경 써야 한다. 그 과정에서 공통분모를 발견하고 이를 최대한 키워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불필요하다거나 무의미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민주사회에서 이러한 경쟁과 대립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결코 갈등을 위한 갈등이어서는 안 되며, 이를 정치적으로 조장하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우리 모두의 장래, 나라와 겨레의 내일을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정말 그래서는 안 된다.

장영수 객원논설위원·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jamta@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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