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상훈]진정한 ‘모범납세자’는 봉급생활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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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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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경제부
이상훈 경제부
매년 3월 3일은 납세자의 날이다. ‘국민의 성실납세와 세정협조에 대한 감사 표시’를 위해 정부가 1967년 처음 지정했다. 이날의 주인공은 모범납세자다. 올해는 총 570명이 선정됐다.

세계 시장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 제어기기 기업 대표, 반도체 부품 국산화에 성공한 기업 대표 등 성공적인 중소기업인은 물론이고 소상공인, 자영업자, 연예인 등 실로 다양한 분야에서 발군의 활동을 하면서도 성실하게 납세의 의무를 수행한 사람들이다. 정치인들의 복지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 극에 달한 요즘 나라 살림의 근간이 되는 모범납세자는 진정한 애국자다.

하지만 ‘진짜’ 모범납세자는 따로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922만 명(2010년 기준)이나 되는 근로소득세 납부자다. ‘유리지갑’의 속성대로 소득이 1원 단위까지 자동 신고돼 세금이 원천 징수되니 기실 모범납세를 피할 수도 없다. 모범납세로 나가는 세금을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연말정산 때 자녀 교복값 영수증까지 살뜰하게 챙겨보지만 요즘은 그나마 공제 폭이 줄어 ‘13월의 보너스’라는 말도 무색해졌다.

납세자의 날에 봉급생활자가 대접받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지난해까지 수상 자격을 개인사업자와 법인으로 국한해 근로소득자는 아예 수상 대상에 낄 수 없었다. 다행히 올해부터 자격 요건을 일부 완화해 근로소득자 30명이 상을 받았지만 상 가운데 서열이 가장 낮은 ‘국세청장상’이었다. 딱히 모범납세자로 내세울 기준이 없다 보니 기부 등 사회공헌도가 주된 평가 대상이 됐다고 한다.

정부는 소득 성실신고 유도를 위해 성실 납세자에게는 다양한 혜택을 주고 있다. 세무조사를 유예해 주고 세무서 민원봉사실의 전용 창구도 이용할 수 있다. 공항 입국 시 전용 심사대 이용, 공영주차장 무료 이용, 금융수수료 면제, 대출금리 경감, 병역지정업체 지정 시 우대 등도 솔깃한 혜택이다. 하지만 이런 혜택은 근로소득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2004년부터 세금 1억 원 이상을 낸 근로소득자를 대상으로 민원증명 발급 시 무료 택배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눈길이 전혀 가지 않는다.

국세청이 최근 5년간 고소득 자영업자를 세무조사 한 결과 사우나의 소득탈루율은 98.1%, 호텔은 66.7%, 미용실은 55%, 학원은 36.4%에 이르렀다. ‘소득신고를 제대로 하면 바보’라는 냉소를 듣는 현실에서 모범납세 사업자에게 당근을 주는 정부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근로소득자의 상대적 박탈감도 이젠 헤아릴 때다. 꼭 상을 줘야 된다는 것이 아니라 납세의 소중함과 중요함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라도 봉급생활자의 기를 살릴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이상훈 경제부 janua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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